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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창의적 사고 & 창의력, 백승휴의 썰로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창의력. 한동안 학원 전단지에서 많이 봤던 단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만 골라서 유혹했다. 이제는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창의적 사고와 창의력은 다르다. 근육을 길러야 몸이 튼튼해 지듯, 창의력이 길러져야 창의적 사고가 생겨난다. 나의 창의력은 블로그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방법은 이렇다. 글을 막 쓴다. 그리고 비공개로 해 놓고 몇일이건 쓰고 싶을때까지 기다린다. 숙성하는 거다. 마음이 끌리면 그때 마무리하고 발행한다. 뭐든 기간이 필요하다. 나의 블로그는 2009년 9월에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1400개이상의 블로깅을 했다. 나는 사진만 보면 글이 튀어 나온다. 사진작가라서가 아니다. 단련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포토테라피스트이다. 사진으로 심리를 논한다. 


백승휴의 강의 스타일. 당당하게 질러 댄다. 나를 교주로 부르게 한다. 처음엔 비웃다가 따른다. 농담이지만 함께 즐기자는 제안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한다. 방법은 일을 놀이처럼 하면서 즐긴다. 사진찍기든 강의든 예외 없다. 그걸 실행하는 과정은 고독하다. 고독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 과정뿐 아니라 결과에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독조차도 즐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의 엔진이 ON이 되어 있을때 생각이 작업을 시작한다. 자칫 NO가 되면 그 생각은 자취를 감춘다. 

"제겐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다. <창의적 사고>와 <이순신 장군의 어록>. 역사적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라봄이란 키워드를 통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바라봄에 따라 결과가 완전 달라진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사람들은 <택도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12척'이라고 했다. 물이 든 컵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물이 반이 든 컵을 보고 '반밖에 or 반이나' 로 나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명량해전에 투입될 배 12척은 적군의 330여척과 싸워야 했다. 그 상황에서 <12척이나 되는>을 논하는 것은 분명 창의적 사고였고 승리로 이끌 수 있던 계기였다.


바라봄이란 개념을 사진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려면 <보다 & 찍기>를 동일시해야 한다. 사진 찍기는 기계작용이 절대 아니다. 사진은 난사하듯 찍어대지만 결국 촬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바라보는 그 곳에 자신이 존재한다. 이걸 지향성이라고 한다. 지향하는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나를 찍는 것이다. 사진 속에는 항상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바라보기와 찍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강의를 시작한다.


심리전. 강의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낀다고 난리다. 웃으라고 보여준 거니 웃어야 정상이다. 우측사진을 보고 웃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들이 그린거라고 말한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림이 더 나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한다. 드러내면 편하다. 난 이 그림을 처음 접하고 당황했다. 이걸 공개하니 자유로웠다. 강의시작은 웃음으로 시작한다. 웃음은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한다. 두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비교하며 생각을 시작한다. 텍스트보다 이미지는 각각 다른 생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경험했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글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 다른 색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다.

무엇을 찍는가? 찍는 것은 나 자신인 사람과 자연 속의 모든 것으로 크게 분류한다. 인물사진이냐 풍경사진이냐를 따진다. 인물사진을 30여년 찍어왔던 나에겐 인물이 익숙하다. 풍경사진도 재밌다. 인물이나 풍경이나 다르지 않다. 인물에는 표정, 풍경에는 느낌이 존재한다. 그 안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의 얼굴과 몸짓 속에 그의 감정이 담긴다. 그럼 풍경은? 물론 풍경이 말하는 것을 읽으면 된다. 어떻게? 내 맘대로 읽는 것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데 풍경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내 감정을 담아 바라보는 것이자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제 사진 찍기에 대한 설명 끝난 거다.

인물사진은 어렵다. 그러나 알고 나면 이만한 재미난 놀이도 없다. 인물사진 찍기에서 찍는 이는 권력자이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의 마음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풍경도 예외는 아니다. 직업인이나 일반이나 다르지 않다. 다 다르다. 성향이 다른 것을 찍어내어 그 답게 만든다. 그 작가는 그 작품을 닮는다.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찍으면 그와 작품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오버액션이다. 골프 코치의 사진이다. 잘 생긴 사람을 엉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목적은 시선끌기에 있다. 성공이다. 왜 골프 코치가 입에 골프공을 물고 있느냐고 묻기 보단 골프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이해한다. 임팩이 강할 수록 그를 궁금해 한다. 그리고 사무실로 발길이 끌린다. 그럼 성공이다. 창의적 사고란 타인과의 경쟁에서 선점하는 것이다. 같은 생각으로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버티지 못한다. 시선 끌기라는 이 사진의 목적과 창의적 사고는 다르지 않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선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를 물며 창의 근육이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이미지로 교육하는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면 속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웃게 된다. 이거다. 이미지의 힘이란 부지불식간에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부담없이 따라하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달라진다?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이게 백승휴식 강의의 특징이다. 

풍경과 사람을 비교한다. 아니 풍경으로 삶을 비유한다. 사람을 말한다. 파도가 치고 있는 장면을 저속으로 촬영을 하니 뭉게져 보인다. 반복된 내용이 싸인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의 현재와 과거가 보인다. 삶이 축적되어 한꺼번에 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지 않다. 이미지라고 한다. 그림은 내면의 생각을 그려내는 것이고, 사진은 밖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발견하는 것이자 만나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하면 답이다. 글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도 사진과 다르지 않다. 하나로 귀결된다. 참 쉽다. 사람들은 나누려고 하지만 하나인 것을 나눌 필요없다. 하나로 놓고 생각을 깊이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상하기. 촉촉한 물기가 바위에 묻어 있고 풀이 넘어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게 틀림없다.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있다. 따낸 것은 아닐 테고, 안익은 것까지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주인의 의도인지 타인의 행위인지는 따져 볼 일이다. 사진만 덩그러니 있으니 <주인을 찾아 삼만리>를 할 수도 없다. 생각으로 그걸 찾아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의 엔진은 일을 시작한다.

인문학이 대세다. 뭔가에 의지하려는 혼돈의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이 이렇게 아름답다. 버려진 거울에 봄은 오는가? 뭐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고 썰을 푼다. 말이 될때까지 이야기를 만든다. 계속 종알거리면 말이 될 때가 많다. 이쯤되면 슬슬 하산할 채비를 해도 된다. 이젠 자생해야지 누군가에 의지하면 몸짓만 큰 애된다.


풍경인데 누군가를 표현한 사진이다. 은유적 표현이랄까. 이테리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곳이다. 브로넬리스키를 찍었다. 뭐 장난하냐고? 장난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창작이란게 원래 권태로운 인간에게 희망을 준 시도 아니던가. 두오모 성당에 돔을 올린 사람이자 원근감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피렌체 예술가 수장인 이사람에게 골목에 좁아 보이는 원근감을 표현했고, 두오모 성당을 살짝 가린 이유는 그를 신비롭게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 

창의력이란 힘은 근육처럼 길러진다.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탄탄해져야 한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진찍기란 1차적 창작이 있고, 사진 읽기라는 2차적 창작이 있다. 이는 <의도와 해석>의 문제를 통하여 다시 가공된다.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각이 완성되다. 창의적 사고의 시작이자 힘이다.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짜증나게 하는 말이 있다. <그때 그때 달라요.>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사진찍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공식에 그 상황을 짜 맞출 수 있겠는가? 서두가 길었지만 사진가이며 포토테라피스트인 내가 창의력을 논하고 창의적 사고를 어떻게 키울 지를 제안한다. 사실 나의 강의는 activity 영역이다. 생각하고 그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때로는 그 답이 현장에 있음을 가르치는 강의이다. 창의력, 탁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위해 현장으로 나가길 바란다. 이상, 강의 끝!

창의적 사고 & 창의력, 백승휴의 썰로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