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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30년전 나는 그곳에 있었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나는 87학번이다. 시골뜨기 서울유학. 재수생활을 마치고 명지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적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단지 취업이 잘 된다는 말만 믿고 선택한 것이었다. (쓰담 쓰담) 나 고생 많이 했다. 전공수업은 대부분 3시간이었다. 모르는 내용을 바라보는 3시간, 그때 난 이미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4년 도를 닦고 하산하여 사진작가가 되었다. 나의 주특기는 모르는 말도 몇시간 감정의 동요없이 들을 수 있다. 대단한 내공이다. 

올해 2017년이니 30년차이다. 동기들이 30년을 기념한다기에 모처럼 모임에 나갔다. 나처럼 머리 좀 빠진 놈, 반백을 한 친구 등등 그 나이만큼 들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연거푸 소주 몇잔을 마시니 알딸딸 했다. 20대 초반으로 시간을 흘러갔다. 나이 50대란 정겹다. 이름만 불러도 그 안에 '너를 사랑한다'란 의미가 담겨있다.

모임 나가기전, 오래된 앨범에서 대학시절 찍었던 사진을 찾았다. 그땐 학과 행사 사진은 내몫이었다. 학교 계단에서기념촬영한 사진이다. 누구 하나 웃는 얼굴이 없다. 그 시절이 그정도로 우울하진 않았는데 어색했나보다. 학과 공부보다 사진에 빠져 4년을 보냈다. 내가 찍어준 사진이 대부분 한두장이 아닐거다 . 한 친구는 취업사진으로 100여장을 찍어줬는데 그걸 다 쓰고 입사했다. 인간 승리다. 지금은 잘 나간다. 

스마트폰 사진이다. 지금은 누구나 찍는 사진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내가 카메라를 들어야 기념촬영의 완성이었다. 인정받은 유일한 영역이었다. 동기들이 나를 좋아했다.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에 가끔 누드사진을 뿌리곤 했다. 나를 보면 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난 입이 무거워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씨, 이씨, 김씨, 이정도로만 하자. 학점도 3,0을 넘은 과목이 없었다. 그러나 당당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은 지금 남부럽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전공으로 먹고 산다. 나는 비전공이다. <different>.

군대가기전 난 술마시면 울었다. 격한 감정이 술취하면 치밀어 올랐던 지 '꺼이 꺼이'울어대곤 했다. 몇번 울었던 기억이 난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술먹으면 아직도 우느냐고 묻는 놈이 있다. 기억력 참 좋다. 요즘은 감정이 매말라서 울음도 없다. 그때가 좋았다. MT, 축제, 체육대회 등 수많은 추억을 함께 한 그들이 좋다. 건강하게 살길...

30년전 나는 그곳에 있었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