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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2018 서울대교구, 사제.부제 서품식을 찍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예, 여기 있습니다."

얼굴도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 곳에서 외마디처럼 쩌렁쩌렁 울린 대답소리가 들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는 모양. <당신의 부르심>이라 했다. 그 <부르심>의 대답이었다. 2018년, 그것도 2월의 첫날! 고척 스카이돔에서 사제.부제 서품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청담동 성당 사진작가로 명찰을 받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망원렌즈, 그것도 초망원렌즈를 가지고 온 촬영자들 앞에서 나는 35mm 광각렌즈 하나 딸랑 들고 있었다. 나에게 이 렌즈는 다가가기의 상징이다. 멀리서 선명하게 그를 바라볼 수 있으나 그건 외형일 뿐이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를 주는 렌즈이다. 서품자들, 그들은 하나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로 보았던 나의 시선은 만족(위안)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함께 함>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모두가 모여 그 음성을 듣고 있었다. 축하하고 위로하며 함께 하는 사제들의 몸짓이 나의 카메라에 온전히 들어왔다. 영상 속에 담아낸 다가감은 나만의 시선이 아니오, 다함께 바라보며 축복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정갈한 몸짓은 최선으로 지속하는 과정에서 다까워진다. 완성이란 없다. 하기위함을 통해 최선으로 다가감이다. <완성이 아니라 다가간다>는 말을 쓴 이유는 이글을 진지하게 읽는 이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나에게로 다가가는 수순을 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제의 길이란 꽃길은 아니다. 어디론가 걸어가며 고난 속에서도 미소 짓는 자들이다. 나는 청담동 성당에 다닌다. 오명균 세례자요한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한 것이다. 조용히 멀리서 말없이 걸어가는 그를 보았다. 마지막에 서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사제다움으로 목격되었다. 말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그의 길을 축복하는 바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요한 15,5>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2018 서울대교구, 사제.부제 서품식을 찍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