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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불확실의 예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표정을 보지 않더라도, 더 분명한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몸짓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그러나 비언어는 언어보다도 몇 배나 더 소통을 시켜준다. 우리는 그것을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라 한다. 하나의 학문이다. 그 정도다.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얼굴을 상상한다. 즐거움·흥미·진지·웃음 등 몰입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며 입가에 미소를 떠 올린다.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던가.


"
눈이 아른거려 뭐가 뭔지 모르겠어"

 노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정확하지 않아 고민스런 말을 던지지만 그 불확실성이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그것으로 치유적 결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소녀들의 몸짓은 즐겁기만 하다. 학예회에는 가족들로 관람객들이 붐빈다. 자기 아이에 대한 기대에서이다. 누구인지 확인 불명의 사진이 그들에게 무엇일까.

 희미한 불빛아래 정확히 인지할 수 없는 이미지는 많은 기억과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것들은 어떤 것이어도 좋다. 다양한 생각 속의 잠자는 사자를 깨우고 있을 테니깐. 몽환적인 그림과 음악에 더욱 심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확한 장면은 둘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아우라의 상실이요, 다음 단계로의 발걸음을 막는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라. '나의 딸이다' 이렇게 멋진 춤을 추고 있는 뒷모습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환한 미소를 떠올려라. 그럼 모두가 행복해진다. 마술처럼 마음속의 그 흐뭇함은 사진이 주는 치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