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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아이들이 찍는 세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아이들이 찍는 세상

아이들의 사고는 유연하다. 무엇이든지 머릿속으로 들어오면 그것을 또 다른 것으로 만들어 낸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의 잠재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이미지를 이용하여 말하기와 쓰기 교육을 시키고 있다. 어른들의 생각 역시 단순히 듣거나 냄새를 맡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이미지 앞에서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생각 주머니가 커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자유로운 가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야외 촬영을 가자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골목길로 나갔다.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들에게 렌즈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설명해 주었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삐딱하게 때로는 역광으로 당당하게 찍으라고. 설명을 듣자 아이들은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지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매일 지나다니던 골목길에 있던 물건들이며 환경들이 그렇게 다르게 보일 수가 없다고 말하며 흥미로워 했다. 아이들은 사진의 소재는 일상이 아니라 뭔가 갖춰진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고정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삶의 주변에서 흥밋거리를 찾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골목길에 주차해 놓은 차의 유리창에 비친 단풍과 아파트를 찍어 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반영의 방법이지만 아이들은 동네에서 이것을 찾아낼 줄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건물 벽에 붙어 있던 계량기가 일렬로 줄을 선 병정 같다고 했다.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세상을 찾아내는가 하면, 사물을 의인화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골목 구석구석에 눈을 돌리며 흥미로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책 속에만 정보와 지혜가 담긴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아이들의 친구이자 스승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도서관에만 아이들을 묶어 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세상천지가 아이들에게 학교이자 스승이다.

 

한 아이는 담벼락에 비친 빛이 피아노 건반 같다고 했다.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길가에 드리워진 빛을 보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 낸 것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들도 그냥 스치고 지나치지 않는 눈썰미를 갖게 되었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중간에서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할 것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들은 두 배로 흥미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컴퓨터 게임 속에 파묻힌 아이들의 영혼이 자연의 향기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한 아이가 포토에세이처럼 글을 지어 왔다. 내용인 즉 이렇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포토에세이 과제를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거실에 귤껍질이 늘어진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나태함과 같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집 주변에 벽 틈사이로 자란 나무를 보면서 힘겨운 상황에서도 살아난 것을 비유하며 자신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집으로 들어가면서 역광으로 인해 실루엣이 만들어진 나뭇가지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떠올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려면 그 나무처럼 몸통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단다. 아이에게 스치고 지나쳤던 일상들이 다시 이야기로 재생됨을 느꼈다.

나는 강의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각이 세상 읽기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왕따 문제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밀치며 아이들을 내몰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 낼 수 있는 방법을 사진을 통해 가르쳐 주면 되겠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사진은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였으며, 일상에서 아이에게 지향하고 있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소재였음이 틀림없다. 막연히 생각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미지를 보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글로 쓰면서 대화를 나누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미지인 사진은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고 그 발전기를 가동시키기에 충분하며, 자신을 인식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진은 아이에게 친구이자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