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긴 장마가 계속되다가 햇살이라도 비출때면 마음까지 후련해진다. 삶의 리듬은 음악과 같다. 음악의 생존 조건이 리듬인 것처럼 삶에서도 중요하다. 동해바다를 향해 이틀간의 공격을 감행했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 현지인에게 모든 걸 맡기고 다가오는대로 받아들인 여행이었다. 색다른 경험에 대한 로망을 안고서. 첫날은 바닷가에서 파도을 바라보고 가슴 속의 열정을 토해내고, 갈대를 바라보며 잔잔한 내면과 조우하기도 했다. 둘쨋날, 이른 아침 자명종을 함박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피카소도 마음에 두었던 파랑, 그런 파랑으로부터 아침은 시작되었다.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 색깔이라는 언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럴 줄 몰랐다. 온 천지가 하얀 색이었다. 흰색 공간의 여유는 하얀 도화지의 상상력을 능가했다. 경계선에는 나무들이 있었고, 그곳으로 빛내림이 시작되었다. 동해 하늘이 군청색으로 배경이 되어 흰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나무 위의 눈들이 실루엣 라인이 보였다. 구름의 모양은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으며, 마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비너스를 육지로 날려보내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수묵화가 그려진 모습. 엷게 물든 하늘색이 하얀 눈과 하나가 되었다. 개울이 담장이 된 집안에서 삽살개가 뛰어 다녔는지 발자국이 현란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함께 뛰어 놀던 추억의 아이들은 간데 없고, 경로당의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오래된 유행가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눈송이가 벚꽃처럼 풍성해 보였다. 누이의 호기심어린 얼굴을 담장 너머로 내밀듯 했다.
이날은 나에게 인생의 선물이었다. 영화의 한장면이 오버랩되며 많은 생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사진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자연이 나를 기다린 것에 대한 결과라는 나의 지론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찰나와의 만남을 뒤로 구름뒤에 둠었던 햇님이 대지를 비추며 대지는 맨얼굴을 드러냈다.
이린 시절로 데려갔던 환영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일상이 사라진 눈 온날의 환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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