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에는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 도심에 살고 있는 나는 1년동안 쓰지 않는 물건을 버리자고 하는 반면, 시골에는 평생동안 한번도 쓰지 않는 물건도 즐비하다. 집주변, 마당이고 텃밭이고 뭐 할꺼 없이 쌓아 두고 널어논다. 그냥 보면 그렇게 지저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또한 그들끼리 관계를 따져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이곳은 고향집 창고 안이다. 입구에는 '보물창고'라는 펫말이 붙어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는데도 부산스럽게 보인다. 신기하여 한 컷 찍었다. 깔맞춤이 잘 되어 있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이건 사물들끼리 대화라도 나누듯 삼삼오오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새로 산 파란 색 끈이 파란 색의 소꾸리에 담겨있고, 반대편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질감을 첮이 놓여 있었다.
살짝 보여진 전기톱은 자르는 일을 하지만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를 잘라 놓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기톱의 신속 정확함은 느림보 톱이 갖는 의미를 따르지 못한다. 기존의 톰은 여간해서는 혼자 톱질하기 힘든다. 옆에서 누군가 붙잡아줘야 한다. 그들은 서로 대화도 나누고, 서로에게 돈독히 하기위한 끈끈함이 담긴다. 들녘에서 일을 도와주던 파랑색 천과 집안 단속을 위한 끈 그리고 농작품의 성장을 촉진하는 비료,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를 자르는 톱이 있다.
내가 본 것인지, 이 물건들이 나를 기다려 준 것인지는 시어머니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 눈에 비춰진 파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요즘 내가 의상부터 시작하여 파랑일색인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빨강색 의상을 즐겨입던 나 자신이 파랑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빨강은 갈망과 열정이라면, 파랑은 배려와 겸손의 색깔이다. 내가 바뀐 건지 세상이 나를 바꿔 놓은 건지? 색깔이라는 표식이 나이 내면을 평가하는 잣대로도 활용되고 있음에 놀랄 뿐이다.
옆에 비료푸대마져도 자신의 이름에 파랑을 담았다. 그 안에 섞인 빨강색은 나의 과거를 말하듯 그렇게 요염하게 누워있다. 사물은, 아니 세상은 항상 나를 기다리며 속삭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깔맞춤 뒤에는 뭔가가 있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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