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에서 익숙함으로, 현재의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까지.
낯설음에서 익숙함으로, 현재의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까지.
벼이삭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지금 나의 고개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나는 고개를 쳐들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나의 자화상은 열정인지 무지함인지 혼돈스럽다. 종착지는 과연 있는 것이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 도전하는 삶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고 픈 열망때문이다.
노인들에게 회상은 과거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의미가 있다. 나도 25년전의 뜨겁고 순수했던 초년생시절의 사진을 시작으로 변화하는 사진을 통해 나의 과거를 회상하고자 한다. 짧은 머리에서 파마머리까지, 그 시절 유행하던 의상속에서 어색한 나를 만나고 싶다. 노련하길 갈망하는 사진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자!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보자.
30대 후반으로 가면서 사진 속에 나의 색깔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화려한 외면을 표현하였고 원칙과 기록에 치중하던 사진에서 내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인간의 심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관상학, 형모학, 조명학, 포즈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들의 사진을 통하여 그들의 몸동작과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잡아내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몇년간 찍어왔던 애견사진으로 개인전, '개똥철학전'을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사진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서서히 다른 곳으로 시선이 옮겨지고 있었다.
20년이상을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었던 획일화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무림을 쳐던 시기이다. 지금의 삶이 이런 사진의 시도를 통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키에 뛰어노는 아아들의 사진은 공개입양아들의 포스터사진이다. 촬영제안이 들어왔을때 개인 경비를 들여 개인전을 열겠다고 제안했다. 사진가로서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시도한 작품이다. 이로 인하여 방송출연은 물론 사진이 말보다 강력한 언어적 도구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사진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처럼 실행을 통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사진가는 많지 않았기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외딴섬 바닷가의 벤치하나를 찍어놓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얼마나 공감하겠는가? 나는 이사진을 필두로 사진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임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설명하자면 의자는 나다. 의자의 뒷면의 바닷가와 코발트색 하늘은 과거이었으며 유혹으로 봤다. 나의 과거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고지식한 사람으로 표현했고, 의자를 덮치듯 달라든 풀들은 주변인으로 표현했다. 이제는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본다는 내용으로 풀이했다. 이렇게 사진을 통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강의를 시작했다. 중앙대 산업교육원에서 포토에세이과정을 개설하여 사람들에게 이성과 감성, 즉 사진과 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변화한다. 나이가 들면 외형의 변화 뿐만 아니라 내면의 성향도 달라진다. 그것은 진리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싫지만 맞이해야하는 죽음과도 같다. 그러나 세상을 읽어내는 일은 노력여하에 따라서 다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더 먹듯이, 나는 오늘도 신선한 치즈를 찾기위해 새로운 창고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고는 오늘이 아닌 내일 찍어내는 사진 속에 있다는 확신으로 오늘 하루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