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까지 카메라를 들고 간다. 그 안에 흥미거리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 이다. 물론 어디를 가더라도 그 기대는 나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뜯긴 부분이 처량하다. 그것은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차후에 있다. 이제 그가 할 일을 잃은 것이다. 50대 퇴직자들의 그것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일을 잃어버린 것은 자존에 상처를 입힌다. 상실, 그것은 중년의 우울과도 연관된다. 이제 서서히 이 두루마리는 상실의 후유증으로 우울을 맛볼 것이다. 고상하게 앉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사람의 요구를 채워줬던 그가 할 일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것에 대한 반항으로 여기저기 딩굴며 세상을 더럽힐 수도 있다. 겨울에 골목에 딱딱하게 얼어버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고 넘어질 수도 있다. 비오는 날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청소하는 사람의 애를 먹일 수도 있다. 착하게 살았던 그가 삐딱하게 세상과 맞서는 일이 많아지면서 여러사람을 애먹일 수도 있다. 사람도 그렇다. 선한 사람이 마음 바뀌면 심하게 나빠진다. 그래서 사람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윤할유와도 같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작은 사진이 붙어 있던 코르크보드이다. 거기에 핏셋으로 붙여 놓기위해 좀 더 나은 곳으로의 변화를 위해 여기저기 꽃히게 만들었던 자국들이다. 흔적들이다. 무심코 쿡쿡 찔렀던 그 자국들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심각하게 죽아간 개구리의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의 급변하는 마음에 맞춰 그때마다 새로운 구멍이 뚫린 것이다. 주인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일지는 모르나 이들에게는 항상 아픈 추억으로 남는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들에 의해 헝클어지고 내팽개쳐진 상황들이 재현되는 것이다. 나는 사진병이었다. 2년동안 20권이 넘는 앨범을 만들었다. 비닐안에 사진을 넣는 앨범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 사진을 넣을라치면 직사각형의 틀안에 사진을 정확하게 넣기위해 플라스틱자로 명확하게 재단하여 한방에 배치하곤 했다. 그에 비하면 이 코르크안에 박았던 핀의 위치는 너무나 성의없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이 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