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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대책없이 떠나는 여행의 매력, 카메라는 권력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여행이란 만남이다.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럿이 떠나는 여행은 혼자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사진은 여행과 많이 닮아 있다. 여행은 낮선 곳으로의 공간 이동이라면, 사진은 다른 시각으로 낮섦을 바라보는 것이다. 둘은 낮섦을 즐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카메라를 가지고 재미난 일들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진기를 들고 떠나는 여행에 중독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는 나에게 카메라는 권력이다. 웃으라, 뛰어라, 달려라, 굴러라, 울어라, 뭐  할 거 없이 다 된다. 아마도 내가 카메라 없이 이런 것들을 시켰다면 싸데기였을 것이다.

나는 순간을 아낀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모아서 즐거움을 만들곤 한다. 이날도 그랬다. 함께 갔던 일행은 8명, 기차에 앉으면 의자를 마주앉을 수 있어서 좋다. 일행 중에 단전호흡 사범출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즉석에서 동해바다를 향해 단전호흠을 시도했다. 가장 가깝게 자연과 만날 수 있는 방법.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었으며,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일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찍었을 그 순간은 내가 찍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침 해에 비춰진 바닷물과 바닥에 묻어난 물기에 집중한다. 바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연인과 셀카를 찍고, 친구와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바위 끄트머리로 걸어가는 고독함이 실루엣 속에서 보인다. 익명이지만 왠지 그 시각, 그 곳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감이 간다.

모래 사막을 만났다. 오랜 기다림, 비다람에도 당당히 서있었던 언덕과의 만남은 환상적인 환영을 만들어냈다. 저 너머에 오아시스가 우리의 갈증을 채워줄 것만 같았다. 

모래 사막에 거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이처럼 절벽을 뛰어 내리는 방식으로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탔다. 때로는 뛰어다니기도, 때로는 바다를 향해 셔터를 누르며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새벽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구경하고 노닐다가 오죽헌과 강릉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삼숙이란 얼큰한 탕으로 해장을 하고, 일행은 예정에도 없었던 횡계의 삼양목장으로 향했다. 천천히 달리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횡계터미널앞 할머니 칼국수집에서 밥까지 말아먹으며 든든하게 산행을 준비했다. 허름함 만큼이나 정감가는 곳이었다. 

삼양목장의 정상, 바람이 왠만한 사람은 날려버릴 기세였다. 전망대를 바라보던 여학생들이 마주치는 거센 바람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동창들끼리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몇번을 뛰어야 날아 오를 수 있을까? 우연한 기회였기에 동료들은 일제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한번 더를 외치면서 멋진 장면을 잡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풍력 발전기의 굉음이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게 했다. 일행은 기차놀이를 했다. 카메라는 이들에게 뭐든 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눈치 볼 필요없이, 그들은 스스로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지만, 그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은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는. 계획하지 않은 여행, 예견하지 않는 즐거움, 그것이 내가 꿈꾸는 여행이다.

76세이던 일행 중 한분이 그 다음날 메시지가 왔다. "condition, gooood!". 

하나 더, 이번 여행이 여운에 남았던 것은 모두가 결정권자였다는 것이다. 누구 한사람의 계획에 의하여 따랐던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한번 이상의 결정에 참여하여 함께 즐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의 의도에서 벌어진 혜택이 아닐까 싶다. 아침을 먹을 식당을 권해주고, 버스 시간과 갈 장소를 상의하고,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여 동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더불어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 결과가 본 여행의 감회이자 평가를 긍정적이게 했다.



대책없이 떠나는 여행의 매력, 카메라는 권력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