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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꿈은 산이다. 오르면 된다. (인하대 강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꿈은 산이다. 오르면 된다. (인하대 강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2012년을 마무리하며, 인하대에서 강의를 했다. 제목은 "꿈은 산이다. 오르면 된다." 단순 무식형의 제목을 적어놓고 한시간동안 강의를 했다. 인하대학생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수능을 본 고3수험생들의 참석이 눈에 띄었다. 꿈을 이야기하자. 학생들의 눈빛은 답답해 하는 모습이었다. 꿈을 어떻게 꿔야하는지, 무엇부터 해야하는지 막막해하는 눈치였다. 꿈을 찾는 것은 나를 만나는 것이자, 지름길은 없으나 적극적으로 자신을 시험하는 길이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찾으라는 것이 허무함처럼 느껴졌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탁월함'을 찾는 것 만큼이나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길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누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 지름길을 찾으려하지 말고 체험을 통해 자신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지금 인기있는 학과는 10년후에도 계속 인기를 누릴 수는 없다. 마치 산처럼. 오르면 내려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인트로에 썼던 나로호를 상징한 인하대 교정에서 강의 한시간전에 촬영한 이미지이다. 꿈을 표현하는데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다. 우주선이 대기권을 통과해야 자유를 얻는 것처럼 그 과정은 힘들지만 꼭 거쳐야하는 과정이기에 적합한 소재였던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을 전부 이루지는 못한다. 이유는 그 과정을 감내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에서 19, 29, 39세때 겪었던 힘겨움을 이야기하면서 그 과정이 거친다음 나 스스로 성장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움츠렸다 뛰는 개구리처럼, 그 과정은 결코 필요함을 역설했다. 강의 주최측에서 요청했던 전자공학과에서 사진가로의  변신해가는 과정을 꼭 빠트리지 말고 이야기해달라는 말에 '아픈 과거'를 떠올리는 힘겨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픈 과거가 강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음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아홉수처럼 19, 29, 39살때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어려운 줄 몰랐다.

강의가 끝나고 3명의 질문을 받았다. 첫째, 저는 자존감이 약하라며 안경너머 조심스레 호심해보이는 남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말했다. 뭐가 당신을 힘들게 하느냐? 과의 적성이 안 맞는다고 말했다. 움츠린 듯 눈치를 살피는 그의 몸짓에는 오랜 시간동안 그를 짓눌렀던 외모콤플렉스와 주변상황으로 인한 의기소침한 성향이 비쳤다. 나는 물었다. 키가 몇이냐? 169라고 했다. 나는 165라고 말하며 멋진 외모를 가지고 당당하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학과가 적성이 안맞으면 그대가 좋아한다는 문학적인 부분에 올인해라. 단 남과다른 스타일을 구상하라. 경쟁자가 없을 정도의 독창적인 영역을 만들라고 말하며, 처음에는 자신에 스타일과 맞는 작가의 작품을 모사라라는 말도 덧붙였다. 둘째 질문은 독서는 어떤것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35세부터 독서를 시작했고 그 시점으로 부터 나의 삶은 바뀌었다. 독서는 일단 무조건 가리지 말고 하라고 했다. 하다보면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책에서 가르쳐줄 것이다. 그냥 몸이 가는대로 따르라고 했다. 그리고 꾸짖었다. 너무 지름길을 찾지 말라고. 세번째 학생의 질문은 나의 꿈을 물었다. 나는 바로 답했다. "교주!" 강의장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광신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강의장이나 스튜디오나. 그것만이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가지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칭찬을 했다. 본강의보다 괜찮았다라고.

중년여성을 시작으로 포토테라피스트가 되는데 7년이 걸렸고, 애견사진을 찍기 시작하여 전시하며 세상과 소통하는데 5년이 걸렸으며, 모델학과 학생들에게 진정한 자아를 찾아주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시간이란 숙성과정이 거치지 않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경험한 것만 말한다.

강의가 끝나자 교사라 자칭하는 여선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등학생들은 이런 강의를 접하기 힘든데라고 하면서 나지막하게 강의료가 비싸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의료가 중요하지는 않다."  백명이 아니라 한명이라도 나의 강의를 통해서 삶이 바뀐다면 그것은 나의 사명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강의를 기획한다는 학생이 다가와 다음에 모시고 싶다며 명함을 받아갔다. 뭔가를 시도하는 그의 열정이 온몸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