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illusion(환영), 바다에서 파도를 만들어 내다. 김길수작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나 평가는 할 수는 없다. 그가 보는 그게 정답이기 때문이다. 봤음의 시각은 오감에서 으뜸이듯, 그것이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된다. 그의 주관이 다른 주관에 의해 간섭받을 수 없다. 그렇게 판단된 그것은 거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존재와 지향하는 그것에서의 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사진작가 김길수의 작품이다. 그는 이 사진에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미지는 점, 선, 면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동양은 선을 중요시한다. 동양의 선에는 면도 포함된 선이다. 붓으로 완성되어 온 오래된 습관이 모든 것을 그렇게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선으로 이뤄졌다. 물론 면도 존재하고 점도 존재한다. 면이 멀어지면 점이 되고, 점을 확대하면 면이 될 수도 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것들이 모아져서 면이 된다고 한다. 그 진리같은 익숙한 어휘들이 낯설음을 갈구하는 나에게는 잊혀진지 오래다. 이 텍스트의 주도자는 나다.

김작가는 이 작품을 '바다'라고 명했다. 바다의 원형은 물이다. 움직임이 없으면 호수다. 바다는 파도에 의해서 그 정체성이 확보된다. 그는 파도를 딱딱한 과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파도는 김길수에게 파장이다. 그는 음영의 대비를 통해서 바다를 표현하고 파도를 표현했다. 멀리에서 파도가 밀려온다. 그 파도는 조각나서 다가온다. 그 파도의 조각은 작가의 마음의 표현이다. 그는 강한 심성을 가지지 못했다. 상한 마음을 그 넓은 바다에서 위안을 받는다. 영화 매트릭스의 현실과 영의 세계를 교차하는 시점에서 영상을 조각나면서 전환되는 신이 있다. 첫인상은 매트릭스였다. 현실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로 본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경험과 존재자가 그 존재를 인식하며 완성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파도를 인식하는 과정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파도는 다시 그를 자극하여 다른 세상을 구성하게 한다. 연결되어 있는 그 관계가 이 작품에 조각난 파도들의 연결과 닮아 있다.

예술가들의 창작적 성향이 그렇듯, 이 과정은 환영이 존재한다. 그렇게 보인 것이다.  착시. 착시란 눈으로만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것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보고자 하는대로 보는 주도적 존재이다. 그래서 그것은 바다로, 파도로 보고자 했다. 바다는 파도의 합성체이다. 조각이 모여서 바다를 이뤘다. 때로는 그 조각이 빛에 가려지고 비춰지는 과정에서 파도로 바뀐다. 성난 파도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파도이다. 파도는 때로는 잠자기도, 때로는 승을 내며 울분을 삭히지 못하기도 한다. 요동치는 내면의 존재자를 움직여 바다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김길수작가는 세상을 재구성하는 섬세함과 강한 파도처럼 역동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프레임 속에 김길수는 파도를 황금분활선상에 넣었다. 원칙주의자다. 바다에서 파도는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 위치에 넣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마음은 바다요, 그 안에 존재하는 움직임의 원형은 파도이다. 파도가 바다를 치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이가 투정하며 어머니의 몸둥아리를 발로 차는 것과 같다. 마음은 항상 여린 아이의 심성을 가지고 있느나 열정의 파도가 바위를 칠때와 같다. 이탈 행성에서 쏟아지는 괴성처럼 귓가를 강하게 후려친다. 그는 지금 길을 떠나고 있다. 망망대해에 몸을 싣고 다른 세상을 찾아가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친 파도에 대항한다. 그는 새로운 파도를 생성하는 세상의 원형으로 존재하며 세상을 재생시켜 나갈 것이다. 나는 그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