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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들녘, 아버지의 놀이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세상이 변했다. 보던 사진을 읽히고 있다. 책, snoop에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데는 책상 서랍안을 들여다 보라고 했다. 물론 공개된 공간에서는 방어적 행위가 그의 행동을 포장하려 한다. 비밀스런 곳을 뒤져야 그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먹고, 일하는, 그리고 말하는 습관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가족은 닮은다. 피는 못 속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나의 아버지의 일상을 들여다 보며 그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창고 문이 살짝 열려있고, 뒤에는 모판이 트랙터에 책장처럼 쌓여 트렉터에 실려 있다. 붉은 색 장갑이 널브러져 있다. 태양이 산마루에 고개를 내민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타고 모내기 할 논의 물꼬를 보러간다. 아침 밥상이 차려지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논에 가 있다.부지런한 농부, 아버지는 일을 숭배한다. 그의 삶에 일을 떼어 놓을 수 없다.  

뜨거운 바닥에 엎드려 사진을 찍었다. 정겨움을 낯설게 보이기 위한 시도였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바라보는 정경이 지루했던 모양이다. 경운기나 트럭들이 먼지를 날리고 지나가는 그곳에 새참을 차렸다. 먹는 자체가 아버지에게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해야 할 일들이 마음을 앞서서 일 것이다. 일이 좋은 것인가, 그 일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때문일까? 그 문제를 따질 겨를 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의 일상들, 나는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생각에 잠긴다.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는 강박.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나의 닮은 점이다. 아버지는 논에서 삽질을, 카메라를 든 나는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 그는 이것이 행복한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마늘밭 옆에 완두콩이 자라고 있다. 아버지의 놀이터라고 한 이유는 아버지의 삶이 놀이처럼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아버지는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평생을 해 오신 일이 삶의 전부다. '송충이의 솔잎'과 같은 관계처럼, 그곳을 떠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자기희생이 모두에게 편안함을 줄 것이라는 길들여진 삶들이 때로는 가엽다. 아버지에게 일은 ‘뭔가’를 하는 과정이며, 놀이다. 놀이란 정의처럼 그 과정을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에게 일이 없다는 것은 목적을 빼앗는 것이며, 삶의 의미를 제거하는 일이다. 누구도 그의 놀이를 방해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스스로 다른 놀이를 찾을때까지는 그렇다. 삽을 내려 놓을때까진 그렇다. 나에게 카메라처럼... 

어떤 것이 답일지...

들녘, 아버지의 놀이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