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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준초이 사진전, 바다가 된 어멍, 해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선생, 이 전시에서 처음 찍은 작품과 마지막에 찍은 작품이 어떤 거요?' 

이 대화가 준초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작품이 계속 나아지고 있음을 말해 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는 집요함이 없었던 게다. 그 애견작업은 접고 말았다. 개똥철학, 나의 첫번째 전시였다. 이번 만남은 전시에 욕구를 불러일르키고 있었다.

큰 것의 아우라란. '바다가 된 어멍, 해녀', 1년이라는 시간을 집요하게 매달리며 완성된 작품이었다고 했다. 작가의 전시에 맞춰진 듯한 대형 수족관.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한 선명함이 그대로 였다.  

 작가의 1년은 다양한 생각들의 결집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결국 그다. 그가 갈망했던 피사체를 찍어낸 것이다. 사진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 창작자들의 몸부림은 다르지 않다. 

작품을 관람하며 떠 오른 내 생각을 찍었다. 반영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이 다양한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전시장 뒷편에 보이는 사진에는 유독 여백이 많았다. 작가에게 '왜?'를 물었다. 여백에 대해 말했다. 여백은 무언이며, 전달하고자하는 언어의 다양성을 말해 준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간략함 속에 담긴 수 많은 이야기처럼. 

이 작품이 눈동자로 보였다. 해녀의 눈망울. 그들을 생각, 바램... 작가는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유독 나에게는 그렇게 비춰졌다. 

누구나 존재를 찾는다. 사진은 그를 닮는다. 아니 그를 찍는다. 그 지향점이 그 안에 존재하는 자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가면 작가를 만나 이야기하기란 바램이 또 이뤄졌다. 전시장을 빠져 나오다가 준초이 선생을 만났다. 오랜 만의 만남이었다. 오프닝 전에 처음 나왔다고 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당돌한 나는 커피를 마시며, 묻고 또 물었다.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왜, 1년이란 시간을 쏟아내며 그곳에서 해녀들을 만났는지도 궁금했고, 존재에 대해서도 물었다. 존재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엄지와 검지를 내밀며 '쪼금'이라고 답했다. 누구에게나 존재를 찾지만 힘든가보다. 그는 말했다. 그 무한한 가능성, 그것을 어떻게 품어 내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란 말했다. 그리고 해녀에 대한 물음은 벽에 쓰여진 글로 대신한다. 결국 나를 찍는 것!

살인미소! 집착이란 말을 좋아한다는 그는 그 과정이 고뇌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당한 뒷모습에서 인간미가 보였다. 그의 사진은  따스하며 힘이 있었다. 사진은 그를 닮는다는 작가노트의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았다. 항상 진지한 눈빛, 작은 것 하나도 심각하게 대하는 그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른다.

과연 준초이 작가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다는 그도 사진이 놀이가 아니었다면 그의 해맑은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게다. 틀림없이, 그는 또 고민했던 사진을 들고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그게 그에게는 행복인것을...


준초이 사진전, 바다가 된 어멍, 해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