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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설날 풍경, 아련한 추억의 파편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기억 속으로 빠져 드는데 사진은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오감 중 시각적인 거 말고도 냄새, 소리, 촉감, 미감 등도 한 몫을 한다. 내 나이 49세, 이젠 나이가 든 걸까? 올해 명절은 특히 아련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빈집과 노인들, 그리고 녹슨 담벼락과 함석지붕까지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진작가 아타 김이 표현했던 '살아 있는 것은 사라진다'라는 논제를 공감하는 순간이었다.

논으로 내려가 동네 풍경을 찍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 "뭐 혀?". 얼마나 정겨운 소리인가. 소리만 듣고도 나는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지금은 살지 않는, 명절때마다 가끔 찾아오는 그들에게 각별한 고향행이었다. 하마트면 못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어서 한 컷 찍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40년전으로 돌아갔다. 즐거워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석양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면서 잔광을 뿌리고 있었다. 노오란 색깔이 집과 그 주변들 그리고 담장까지도 물들이고 있었다. 두 내외가 살고 있는 옆집, 하기야 둘이나 혼자 사는 분들이 대부분인 동네는 쓸쓸하기에 앞서 씁쓸했다. 이렇게 하루는 저물어 갔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가로등이 대낮부터 켜져있었다. 누가 나무라지도 않았다. 가로등을 나태함을 꾸짖는 이도 없었다.

마젠타 톤의 색을 하며 넘어가는 석양의 잔잔한 빛깔을 감상하노라니, 어느덧 동네 골목들을 유람하며 감성적인 나의 감정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과 뛰어 다니며 놀던 그때가 진정 그리웠다.

밭고랑 너머 아련히 바라보이는 조그마한 산들이 정겨웠다. 

저 멀리 보이는 새로 지은 집,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귀농을 했다. 내려 오면서 예쁘게 집을 지어 놨는데 지나다니면서 항상 내 시선을 잡아 당겼다. 

동네 형이다. 명절때 내려오면 밭일을 한다며 가까이 다가가니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있었다. 노동 뒤에 오는 개운함과 희열을 맛본 듯 표정이 넉넉해 보였다. 

마당에 들어가 인사하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며느리들이 고개를 돌리고 찍지 말하고 했다. 그러나 시골 인심이란게 그런가, 꺼낸 김에 한 컷. 준비 안된 건지, 자신이 없는건지 뭐 시골에서 그런 거 따지고 사람 만나나...ㅋㅋ

총싸움하며 무협지의 무사처럼 넘나들었던 돌담이다. 지금은 뛰어 놀 아이들이 없어서 심심한지 돌담의 돌들이 멍한 표정이다.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무지 고독한 세상이다.

자식에게 싸 줄 대파를 작업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친구네 밭이다. 멀리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더 멀리에는 서해바다가 보인다. 난 축복받은 놈이다. 뒤에는 산들이 놀이터를 제공했고, 때로는 바닷가까지 달려가 친구들과 조개랑 게를 잡으러 가곤 했다. 학교 끝나면 저수지에서 멱감으며 더위를 식혔다. 집 뒤에 대나무를 잘라 활과 화살을 만들었고, 나무를 잘라 윶놀이도 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장난감으로 놀았던 것이다. 비석치기는 널린 돌을 주워서 한 다음 그 자리에 두었다. 이 얼마나 정겨운 자연과의 대화냔 말인가. 이런 고향을 자주 못 내려간다는 것이 한 스러운 뿐이다. 아버지는 내게 밭일을 하면서 내게 말하셨다. 아이들 대학 마치거든 가끔 내려와서 농사도 지으라고. 땅은 인간에게 무한의 것을 제공한다. 인간은 땅에게 무한 감사를 해야 한다.


설날 풍경, 아련한 추억의 파편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