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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사진속에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라.

 두 사진이 닮았는가? 닮았다고 생각하면 닮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생뚱맞다. (좌)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거울속에 비춰진 나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우측사진은 작은 '나'가 큰 얼굴의 '나'를 응시하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든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진이나 피사체를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찍었다면 그 의미 하나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행위 중의 하나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큰 틀안에 작은 틀, 그것은 이야기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먼저 사진속의 나를 이야기해보자. 나는 찍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렌즈를 통하여 목적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 찰라를 잡아내기 위한 몸부림. 두눈을 부릅뜨고 원하는 것을 재구성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곁이 있던 사람이 사진 찍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피사체보다 내가 흥미로운가 보다. 나의 표정도 시선을 끌지만 나에게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흥미로운 표정이 더욱 시선을 잡고 있다. 과연 내가 찍는 것은 무엇일까? 지켜보는 사람이 바라보지 않는 그 피사체는 무엇이기에 일상적으로 행해질 그것을 반대로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이 그 안에 들어있단 말인가? 

 (우)사진을 보라. '나'를 바라보는 '나'이다. 얼마나 철학적인가? 가볍게 바라볼 수 없는 제목이다. 뭔가 아우라가 풍기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작가의 창작의도는 꽤뚫어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골자는 알듯하다. '나' 자신을 바라보라는 이야기이자,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 인간들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기타등등의 이야기를 해대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프레임을 따로 하지 않았다. 그늘과 햇살이 드리워진 경계를 만들어 다른 프레임을 만든것이다. 사실 프레임이라는 것은 선을 그어 경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 프레임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색깔의 차이, 선 그리고 지금의 사진처럼 빛의 농도에 따라 그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 사실 진짜 틀에 끼워서 경계선을 만들면 극명해지는 것이 강하지만 나는 그렇게 누구나 할수 있는 일들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별화라고도 하고 창의적 사고라고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독창적 자존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을 가르치는 나는 남들이 똑같이 행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않는다. 물론 내 방식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르게 하고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다. 다른 것들이 충동을 일으켜 또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의를 생성시키고자 함이다. 노동을 유희라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사진찍기가 놀이라 했다. 천상병시인이 말한 우리의 삶을 소풍이라고 했던 것처럼 노는 것을 가당찮은 일로 치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자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