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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실행을 통한 감성적 사진찍기의 결정판.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2014년 현재, 세상은 '뉴턴의 두뇌를 가진 베토벤'을 원하고 있다. 논리와 감성의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뜻이다. 이 둘을 한번에 낚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찍기다. 삶의 즐거움이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도 있는 것처럼, 사진찍기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감이 매력적이다. 아이들의 그림일기가 상상력를 자극하며 자기표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이제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포토에세이가 존재하고 있다. 단순한 수다가 아닌 논리와 감성적 표현 말이다. 

반복은 익숙함을, 익숙함은 권태로 변질되곤 한다. 'different'라는 창의성은 우리를 압박하기도 하지만 활력을 주기도 한다. 고흐, 고갱, 세잔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같은 생각도 'different'적 표현이 있었기에 공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생각이란 끊임없이 샘솟는 샘물과도 같다. 신선하고 달달한 생각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흥겹게 만들어주는  매개물이다. 매개물이란 이름은 생각이 완성이 아니며, 반듯이 실행에 의해서만 그 형태라는 완성물을 만들 수 있다.

교육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사람들에게 신세계로 인도한다. 단, 지속성과 자발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타성에 젖는다든가, 작심삼일로는 그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내가 성북구 평생학습관에서 사진교육을 시간한지,1년 반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흥미로운 건 강의명이 포토테라피스이다. 테라피라는 말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겠지만 이제는 포토테라피라는 수업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즐거움은 배우는 사람의 열정에 의해 좌우된다. 개인차가 많은 교실에서 각기 다른 방식의 지도를 통해 목적을 도달하도록 돕는다. 당근과 채찍을 통해 각자의 목적에 다다르게 하는 차별화 전략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동적인 일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감동적이라기보다는 보람있는 일이다. 70세 중반의 수강생, 김인숙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되는 수업에 과제를 내기위해 일주일에 5일은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고 했다. 은행원이었던지라 감성적 사진찍기에 버거워했다. 은행의 좌뇌 활성화 업무방식때문에 감성적 세상보기가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1년이 지나자 수강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통화해본 결과, 더 이상 변화가 없음에 동료들과 선생에게  미안한 생각때문이라고 했다. 한번 만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마지막 시도를 시작했다. 2년차 강의에서 과제를 제출한 사진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진 위에 감성적 텍스트가 부가되면서 소녀적 감성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중물처럼 내 안에 잠겼던 그 촉촉함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던 것을 깨우는 작업이 교육이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인숙씨의 첫번째로 제출한 과제이다. 사진을 배우러 다녔고, 기본적 구도를 통하여 자기표현적 사진촬영을 했던 것이다. 이 사진이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촬영했다면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의 사진인지 분별할 수 없는 무개성적 사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쁜 꽃을 선명하게 찍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를 황금분할비에 의하여 촬영한 사진이 나쁜 사진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제안하고 김인숙씨에게 요구했던 사진은 나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화된 사진을 원했던 것이다. 그것만이 사진을 통하여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사진행위를 통해서 삶을 즐길 수 있기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시선을 완성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있다. 기존의 촬영방식은  '그것'이라는 사물에 대한 시선이었다면, 이 사진들은 '너'라는 인지방식인 것이다. 상대를 사물로 인식하던 시각에서 의인화된 시각으로의 변화이다. 세상의 타자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며 자기와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앞에 존재하는 친구로 인식한다는 것,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상호소통방식이다. 상상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 또한 다각화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에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그녀는 이제 외롭지 않다. 세상이 모두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진은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사물을 타자에서 2인칭으로 바꾸어 소통과 공감을 유도하며, 세상을 사유하는 것이다. 


실행을 통한 감성적 사진찍기의 결정판.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