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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얼음으로 성쌓기', 생각 나누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외장하드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한장의 사진을 꺼냈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지만 겨울이 머지 않았음을 인식해서 인지 이 사진에 시선이 꽃혔다. 왜 찍었을까? 아니 나에게 왜 찍혔을까를 묻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가 지향했던 그곳, 나는 그곳에서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겨울 한가한 어느날, 일행의 발걸음은 남이섬으로 향했다. 두꺼운 외투가 무겁지 않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짧은 거리지만 배를 타고 건너서 보물섬에 도착했다. 오후의 햇살이 산마루를 넘어가며 느린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선차장 옆쪽에는 누구의 소행인지 모를 얼음으로 성쌓기 놀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을 깨며 공격하는 배들이 만들어낸 조각들을 얹어서 쌓은 듯했다. 아이들이 소꼽놀이처럼 쓸모없는 짓이었지만 보는이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강물의 범람을 막기위해 쌓아 놓은 보처럼 보인다. 가끔은 물이 틈사이로 흘러 넘어온 듯했다. 아니 얼음이 녹았든.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안! 평온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둔함으로부터 자극을 가하며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를 불러 일으키는 자극제. 불안은 항상 우리를 숨가쁘게 만든다. 그러나 불안을 부정적 어휘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자극이란 직감처럼 불꽃을 일으키는, 마중물처럼 새로운 것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얼음성은 유한하다. 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손대면 달라붙을 정도의 냉정함이 정오의 햇살아래에서는 미끈거리는 정감을 준다. 찰랑거리는 잔파도가 얼음성을 자극한다. 때로는 위협적이지만, 잔파도가 던지는 수다는 정막을 깬다. 관계는 각각 다르게 설정된다. 얼음은 물에서 만들어지지만 물로 인하여 녹아내리기도 한다. 얼음은 차가운 햇살이 만들어내지만 다시 따스한 햇살을 마나면 새로운 형태로 변질된다. 관계가 그렇고, 생과 사의 이분법이 그렇다. 아날로그의 생성과 소멸을 디지털은 0과 1이라는 단순 기호로 표현된다. 단순함은 단순한대로, 복잡함은 복잡한대로 긍정적이다. 끝까지 좋을 수는 없다. 반대로 무조건 나쁜 것도 없다. 그래서 삶은 살아볼 만한가 보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볼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낼 것인가? 풍만한 사유는 스스로에 의해서 선택된다.  


'얼음으로 성쌓기', 생각 나누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