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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더불어 함께 있음'을 조각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명작이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트와 비아트의 기준이 뭔가?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 아니던가. 창작 자체가 자신과 만나는 것이자 몰입을 통해 치유적 결실을 보는 행위이다. 길게 설명하지 말자. 이 작품들은 쌩초보  여성작가의 작품이다. 그 녀는 나와 동거동락을 19년차 하고 있는 여자, 나의 아내다. 목조각을 완성하면서 심여를 기울였던 그 마음을 높이기위해 남편의 해석을 곁들이고자 한다. 작품은 항상 의도와 해석의 문제만을 남기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진다. 자, 이제 나의 썰을 들어볼 차례다.

성모자상으로 보이는가. 불상과 비슷한 투박함이 보인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모님의 질끈 감은 눈은 깊은 상념에 잠겨있다. 두 얼굴 모두 은근한 미소를 띤 게 아니다. 절제의 산실이다. 중세를 넘어 아트의 꽃인 르네상스 시절의 작가들도 다양한 표정과 컨셉으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섬세하게 표정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성모상과는 다른 표정이다. 미래를 걱정하고 현재의 혼돈에 휩싸인 작가 자신의 내면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개인이기에 앞서 종교적 화합의 시도이어야 한다. 성모상의 질감을 불상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종교적 이념을 넘어 하나임을 갈구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있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종교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내적 평화,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 대동소이한 바램을 가지고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를 제시한다. 결국 옷은 달라도 추구하는 의지는 다르지 않음이다.

물고기들의 합창처럼 보인다. 두개의 작품을 하나로 만들어서 보여 준 2차적 작업이다. 조각과 사진의 만남, 이것은 부부의 합일이다. 두 작품을 마주하게 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작품을 끌어 올리려는 2차 창작인 사진찍기을 통하여 더욱 하나됨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함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의 플레어를 통하여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신비주의를 고조시키고자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는 여럿의 총합임을 통하여 더불어라는 의미를 극대화시켰다. 이 작품의 둘 사이에는 '사이'라는 거리를 통하여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거리가 만들어내는 여유가 그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원동력임을 만들어낸다는 의도이다. 

동물의 얼굴이다. 돼지라는 캐릭터는 절제할 수 없는 욕구의 산실이자, 상호관계적 개념 상실의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동물의 얼굴에 감정을 불어 넣고, 어둠과 밝음의 대비 속에 얼굴을 집어 넣었다. 음지의 얼굴은 밝음의 얼굴보다 표정이 '더불어 함께 있음'에 덜 충실하다. 있고 없음의 대비는 그 내적 사이를 만들어 의미의 극대화시키고 있다. 반영의 통해 '더불어 함께 있음'을 동어 반복적 중복을 통해 의미를 배가시켰다. 단순히 톤의 변화만으로 얼굴이 가진 의미를 극대화시켰다.  

작가는 목조각을 통하여, 또한 사진 촬영이라는 2차적 작업을 통하여 '더불어 함께 있음'의 의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작품은 때로는 외형적 의미를 통하여, 때로는 보이지 않는 내적 사유를 통하여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종교적 화합, 미물들의 관계, 동물의 얼굴에 직설적 표현 등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 사유가 삶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말에 공감한다. 그 안에 잠겨있는 의미를 발라낸다는 그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정교한 표정의 표현이 있는가하면 거친 터치감으로 의미만 전달하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작가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조각이라는 행위를 통해 극복해 냈다. 어느 순간 아내의 밝아오는 표정을 보며 창작이란 진정한 치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몰입이라는 놀이의 습성이 창작을 놀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여 흥겨워 한다. 이제, 내면에 쌓인 응어리가 손끝의 몸부림을 통하여  화해의 모드로 승화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작가 아내, 평론 남편.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로 작가의 위상을 깍아내리는 일은 없길 바랄 뿐이다.


'더불어 함께 있음'을 조각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