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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감성적 접근, 김유정역 탐방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나는 요즘 가을을 타나보다.
그 가을이 김유정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던 "김유정역".  어떤 느낌이랄까? 역사속에 천재소설가 김유정을 만나는 듯한 그 느낌. 

일정을 잡았다. 그것도 갑자기.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이 짧은 여행은 가히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그럼 개봉박두!



상봉역에서 경춘선 완행을 탔다. 가을 바람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의 책장은 나의 흥얼거림속에서  기름을 바른 것처럼 잘도 넘어갔다. 잠깐씩 바라본 아내의 얼굴은 가을 햇살을 머금어 사랑스러웠다.

어둑해진 빛과 그림자가 우리를 반겼다. 여기는 청년 문학인의 숨결이 잠들어있는 바로 그곳, 김유정역이다.



김유정 문학관을 정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살포시 훔쳐보는 것으로 그 느낌을 대신해야 했다. 단오절 처녀의 가슴조이는 널뛰기의 마음으로, 고개를 쭉 빼들고 호기심어린 소년처럼.
 


저녁노을이 장독대의 잘록한 허리라인을 살려주고 있었다.
들녘의 곡식 익는 소리가 노랗게 들여왔다. 밥짓는 웅성거림은 코끝을 울렸다. 된장, 김치찌개? 어떤 것이든 이 분위기엔  다 좋았다.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아낙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해는 더욱 기울어 가고 있었다.


채도 높은 벽색깔이 시선을 끌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 그윽하게 흩어지는 자국들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화가의 감정을 화선지에 그리듯이 건물뒷편에 기대고 서있는 전봇대가  편안하게 보였다. 붉게 물든 풍광이  애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걸었다. 말없이 걸었다.
 


저 너머 길에서 소설가 김유정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수심에 찬 모습이었다. 야학에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막걸리를 마셨는지 비틀거린다. 흥얼거린다. 노랫가락에는 삶에 대한 회한이 묻어있었다. 눈인사를 했다. 우리를 인식하지 못했는지 그냥 지나쳐갔다. 천재들의 시각이란 현재가 아닌 꿈같은 미래나 기억의 저 언저리 그 과거를 넘나드나 보다. 김유정, 그의 삶은 너무 짧았다. 나와의 만남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유성처럼 빨르게.  어스름 달빛이 밭고랑을 비추고, 그 너머 마을에는 불빛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를 평화스럽게 만들었다.


마을 중간에 큰 길이 나 있었다. 저 멀리 기차역이 보인다. 기차가 지나간다.
전철이라서인지 소리없이 지나간다. 기차역은 그래도 지나가면서 소리를 한번 질러줘야 기차역이지, 운치는 약간 떨어졌다. 밤은 어두워지고 동네의 개들은 짖어댄다. 낯에는 사람들이 보이고 밤에는 개들이 동네를 지킨다.


애절하게 타들어간 김유정의 가슴같았다.
숨을 거두기 몇주전에 보낸 대학동료의 편지를 읽고 가슴이 아팠다.
어떤 글이든 원하는대로 쓰겠다. 돈이 필요하다. 닭, 살모사 그리고 구렁이를 사다가 몸보신해야겠다. 그래서 살고 싶다. 애절하게 들리는 그의 글에는 붉게 물든 가로등처럼 애절했다. 


파란 하늘이 새벽을 알리는 모양을 만들기위해 카메라의  캘빈도를  조절했다. 아직도 저녁. 동네를 돌아 나오다가 허기를 채우려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바라본 그곳은 바로.


점순이네다.
춘천닭갈비. 이것은 아마 소설가 김유정이 고아 먹고 싶었던 닭이다. 닭이나 닭갈비나 똑같다. 흔하디 흔한 그것을 그 당시에는 먹지 못했던 가난했던 그 시절이 원망스러웠다. 들어가니 우리들만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이곳을 당신을 위해 전세냈다고 했다. 농담인지 알면서 기분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평상시에도 이런거 우리 아들처럼 많이 했더라면 사랑받고 살았을텐데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이 삶의 지혜인데.

우선 파전을 시켰다. 오리지널이라면 주인여자가 가져왔다. 바삭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유기농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부를 시켰다. 바로 만든 것처럼 큰 덩어리 몇개가 국물속에 담겨있었다. 어린시절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데 기다렸다가 얻어먹었던 그 맛이었다. 가격은 싸고 맛도 좋고. 그리고 분위기도 좋았다.  막걸리를 시켰다. 흔들어야 제맛이라며 유코치는 연신 흔들어댔다. 밸리댄스를 추는 여인의 엉덩이처럼. 흔들어도 너무 흔들었다. 요즘 그가 외로운듯 보였다. 주거니 받거니 시간을 흘러가고 뒷편에서는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줄 닭갈비를 만들고 있었다.  먹은후 밥을 볶았다. 그 맛또한 일품이었다.

이번 여행은  정겨운 대화와 느낌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안에서의 생각들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다. 행복은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을 들여서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왕복 4시간만 투자하면 정말 기분좋은 곳에서의 추억을 만들수 있다. 이곳 김유정역을 강추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