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기념촬영의 의미에 대하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람들은 모이면 기념촬영을 한다. 어떤 의미인가?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찍겠지. 기념할 만한 일이 일상에서 얼마나 되며, 다시 말하자면 기념되지 않는 일이 뭐가 있을까?  셔터를 누르면서 웃음을 강요하거나 비슷한 자세를 취할 것을 강요한다. 그것은 기원과도 같다. 웃믐은 행복을 기원하고, 동일한 자세는 공동체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공동의 바램을 유도하는 의도가 다분히 실린다.

증명사진처럼 외적 표현의 동질성을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기념촬영은 행위의 암시이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물사진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하듯, 특히 단체 기념촬영은 그 조직과 모임의 정체성을 언급하게 되어 있다. 그럼 기념촬영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그 안에 찍힌 사람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찍은 사람이다. 기념촬영은 증명사진의 동일성과 초상사진의 개념성을 동시에 확보하기에 이른다.

멤버들의 여행을 상징하는 사진이다. 물론 이 사람들은 청산도, 울릉도, 제주도, 석모도, 그리고 이번에는 동해를 돌아 용평으로 향했다. 기념촬영을 하게 된 계기는 배경으로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멋진 집들 때문이었다. 그런 의도된 위치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거기에 내가 있었다'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행위이다. 그것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로망처럼 갈망하고 지향하는 것들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관자의 시선에는 비웃음이다. 그것은 과시가 아닌 단순한 자기위안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배경앞에 그것과 연관지으려 사진을 찍고 있다. 

다시, '나 거기에 있었네'. 그것이다. 어딘지는 그들만이 안다. 뻔한 장면이다. 길가를 걸어가는 사람들, 하늘과 노란색 난간. 동네 어디를 가더라도 이정도의 상황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찍힌 사람들은 그날의 바람소리와 거친  파도를 기억한다. 누구랑 함께 했고, 아예 몇일간의 기억까지도 끄집는다.  

포토테라피반의 멤버 중 일부가 제주도 눈체험을 떠났다. 제주도는 아주 매력적인 섬임에 틀림없다. 반대편에서 오는 눈을 확일 할 수도 있고, 바닷가에는 바람과 햇빛이 쨍쨍거리고 있으나, 한라산 중턱만 올라 가더라도 온통 눈세상이다. 딴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 그냥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공동의 행위를 통해서 더욱 그 감정의 표현을 극대화 하고 있다. 행위의 동질성이 더욱 친근감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벤트 괜찮다. 이것의 의미와 방법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시키고, 거기에  소원을 적으라고 한다. 인생의 목표도 좋고,  올해의 계획도 좋다. 그 내용을 보면 욕심을 부린 것들이 아닌 소소한 일상처럼 그냥 자신에게만 소중한 소원을 적고 있다. 사실, 원대한 꿈도 좋지만 자신에게 알맞고 성취할 수 있다면 딱이다. 그런 소원들을 적어내려가는 사람들의 손가락은 고사리처럼 야무지고 사랑스럽다. 풍등을 올리고 기도하라고 주문했다. 따라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풍등이 온전하게 나를수 있으까 궁금해하는 사람등등 다양한 액션이 난무한다. 이 또한 기념촬영이다.

각자가 자신의 존재여부는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얼굴이 안 보이면 몸전체로 시선이 옮겨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증명사진은 동일성에 대한 부분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a는 a이다.' 라는 확정말이다. 자기확인에 대한 개념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증명사진도 1차적 목적을 달성하면 그 이후의 부가적인 내용이 추가되는 것도 사실이다. 증명사진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1차에 지나지 않고 바로 2차적인 목표를 향해 달음질을 치게 된다. 그러나 초상사진은 다르다. 초상사진이 가지고 있는 그 내면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초상사진으로서의 가치를 충족하게 된다. 증명이라는 확인의 개념을 원래부터 포함하고 그 이면의 개념에 충실한 것이다. 스튜디움보다는 푼크툼과 같이 내면에서 가져올 감정적 전이가 존재한다. 물론 이 포즈와 백그라운드가 어떤 스튜디움의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 이 기념촬영은 증명이나 초상사진의 범주 중 어디에 속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다. 걷는 모습, 생김새, 공통으로 향하는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들의 행위를 설명한다. 그럼 이 초상사진의 목적은 일단 개인적 소양이 아닌 단체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간다. 단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표피적인 부분에 만족하지 않고 부가적인 이야기에 귀결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이 사진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미지에서 동료의식을 느끼겠지만 보이지 않는 촬영자를 자신의 인식에 굴레에 포함시키게 된다. 

당당하게 걷는, 구부정한, 어정쩡한, 도도한, 뭔가 표현하기 힘든 자시를 한 사람들로 구분된다. 의상의 색깔, 헤어스타일, 생김새등이 다르다. 물론 정면에 대한 명확성 못지 않게 측면사진에서는 더욱 그를 그로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얼굴은 시선을 끄는 우선 순위이지만, 얼굴의 정면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2차적 시선은 몸전체로 옮겨간다. 이제 몸의 구석 구석으로 시선을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작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찍으며 그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얼굴로 들어가면 그것의 오묘함이란. 얼굴은 패턴으로 인식하며 그 사람을 구별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얼굴이 빠진 그 자리에는 몸 전체가 패턴화되는 것이다.  

기념의 의도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존재한다. 아마 무의식적 의미가 더 큰 것일 수도 있다. 기념촬영, 카메라가 인간에게 남겨준 선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