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어베일러블 라이트(Available Light)의 의미.

빛은 생명이요, 진리다. 익숙한 문장이다. 특히 사진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빛이 이미지를 만들고, 그 안에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란 빛이 가진 진솔함을 의미한다. 이미지에서 그 빛이 원형을 더듬어가면 그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베일러블 라이트(Available Light)란 무엇이고, 그 경계는 어디까지 인지를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볼 까 한다. 빛의 원천은 태양이다. 구름에 가리면 차분해지고, 거기에 더 많은 것들에 의해 가리워지면 차분함을 넘어 다운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흐린날, 눈이 내리면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컨트라스트를 만들어 낸다. 

산책하며, 출사하러 가서, 그리고 일상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통하여 그 빛의 근원지를 찾고자 한다. 어베일러블 라이트(Available Light)를 의역하면 '사용 가능한 모든 빛'을 말한다. 태양광, 천공광, 형광등과 백열등을 비롯하여 스트로보 뿐만 아니라 촛불이나 달빛까지도 이에 속한다. 아마 분노하는 이의 눈빛에서 발광하는 불꽃까지도 활용해야 할 판이다. 이른 아침, 해가 지고 난 뒤의 잔광은 더욱 신비롭다. 

버버리의 대형광고이다. 1차 제작물에 2차적으로 빛이 비춰지면서 가로수의 그림자가 첨가되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택시가 광고판의 크기를 대비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원본에 따스한 색깔이 비춰지면서 원형이 변화되었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이 나무를 비추며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엷은 구름 사이로 아침 빛이 강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실루엣 바로 직전의 디테일 상실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익명성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냥 자전거 타는 사람이지, a나 b의 이름을 가진 자로 구체화 시키지 않아도 된다. 석양에서 비춰지는 역광의 실루엣에는 카메라에 부착된 스트로보나 반사판을 활용하여 익명성을 타파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단란한 가족이다. 전용 스트로보를 천장에 바운드를 하면서 버터플라이 성격의 패턴이 만들어졌다. 이 사진에 필라이트는 앰비언 라이트이다. 실내에서 만들어지는 형광등빛과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광만이 존재했다면 뒤에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는 노출부족으로 인하여 누구인지 조차 구별하지 힘들었을 것이다. 빛이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빛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이들과 아빠가 입은 흰색 의상이 낮은 조명에서도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다. 백그라운드로 보이는 산골짜기에서 안개가 자욱하다. 하늘에는 구름이 아침 태양을 소프트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맑은 날 태양과 구름의 차이는 스트로보의 베어밸브와 대형 소프트박스의 개념차라고 해두자. 엄밀하게 따지면 앞의 나무가 주피사체이므로 역광사진이다. 그래서 소나무의 이파리에서의 톤이 낮지 않기에 디테일이 보이지만, 좌측의 나무는 낮은 톤 때문에 실루엣으로 보인다. 낮은 광원이 채도까지도 잡아 먹고 있다. 원래 빛은 채도까지 포함하고, 어두워지면 채도도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노출오버에서도 채도도 당연히 사라진다. 잔잔한 아침의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해가 넘어간다. 물론 석양이 이렇게 오랜지 색을 띠지는 않는다. 후작업으로 내가 느꼈던 이미지를 더욱 극명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카메라 가까이에는 빛이 없기에 낚시질하는 사람이 실루엣으로 그려졌다. 디테일이 사라진 것이다. 낚시꾼의 몸짓에는 그의 표정까지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섬세하게 시선이 멈춘다. 물표면의 잔잔한 파도, 그리고 물가에 풀들이 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없었던 사진보다는 훨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해는 산 너머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잔광은 잔광이 아니다. 노출증가에 의하여 강력한 빛으로 꾸며지고 있다.

대낮의 숲속, 스폿처럼 비춰진 빛이 진달래를 속까지 비추고 있다. 물고기가 속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진달래의 혈관의 질감까지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무 줄기의 낮은 채도가 진달래의 분홍을 더욱 극화시키고 있다. 인물사진으로 말하자면 헤어라이트이다. 역광이 대지의 큰 반사판에 의하여 전체를 풍부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명은 조명의 숫자를 논하기에는 인간의 시선으로는 역부족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요즘 익숙한 장면이다. 프리젠테이션, 이제는 말로만 하지 않는다. ppt 파일을 통해 극명하게 자신의 의중을 전달한다.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야외에서 빛이 비춰지면서 입체적으로 상대편 인물이 주인공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활용했던 그런 것들이 지금 보여주는 ppt의 진화된 모습이 될 것이다. 물론 화면의 밝기에 비하면 발표자의 얼굴은 볼 수 없는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측 창문으로 들어오는 윈도우 조명이 터치하면서 인물을 살려냈다. 그게 아니라면 화면에서 반사되는 빛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빛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마 윈도우 조명이 없었다면 화면이 조금 어두운 화면에서 실내광원을 활용하면서 대비를 낮추면 화면과 발표자의 이미지를 전부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주가 사람이냐 ppt의 내용이냐에 따라서 노출의 기준이 달라진다.

평범한 장소이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촬영자의 마음을 혼돈 그 자체이다. 빛이 들어오는 여러 군데이기 때문이다. 두명이 창문이지만 인물에 닿는 조명과 전경에 비춰지는 조명이 다르다. 일단 좌측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주인공을 비췄다. 그런데 흑인은 얼굴톤이 어둡기때문에 그의 우측 뒷면에서 들어온 빛으로는 디테일을 살릴 수 없다. 물론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강하기 때문에 실내 등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래서 휴대용 스트로보를 우측 창측에서 들어오는 빛처럼 꾸며 세팅하고 림라이트 성격의 빛을 만들어 냈다. 관전 포인트는 전경의 녹색 이파라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질감을 봐줬음 좋겠다. 프레임을 세로로 구성한 의도도 아웃포커스 되었지만 이들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미세하지만 보는 이에게는 또 다른 의미일 수 있으니깐...

이른 아침, daylight로 화이트 발란스를 맞추면 이런 색감이 나온다. 온전한 아침을 말해준다. 아마 색온도를 높이면 대낮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얼마나 조명이라는 언어에서 색온도의 역할이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물에 비춰진 것을 반대편의 풍경이 아니라 푸른 빛을 만들기위한 트릭이라고 보면 된다. 멀리 안개가 살짝 낀 것 또한 아침 안개에 대한 로망을 감지할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사진이라고 본다. 멀리 강건너 아직도 불을 밝히고 있는 가로등이 시각을 말해준다.

이기적 사진찍기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자신은 숨기고 남을 훔쳐보는 형상이기에 그렇다. 어둠에서 밝음을 바라보는 것은 비단 터널에서만이 아니다. 건물의 안이라든가 밖에서 불이 켜진 내부를 바라보는 것도 같은 느낌이다. 어둠과 밝음의 대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자연광에 노출을 맞추고 서서히 그라데이션으로 들어오는 빛의 생명력을 지켜보는 것이 이 사진의 의도라면 의도이겠다. 

오래된 건물의 흑벽담이 개나리의 노란색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위쪽에서 비스듬이 내리치는 잔잔한 빛이 눈을 씻고 봐야 보인다. 눈으로 보면 안 된다. 마음으로 봐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봐야 보이는 잔잔한 빛 말이다. 사진을 찍다보면 소소한 피사체마져도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건 사진 찍기의 묘미이다. 인정 드문 산 속 외딴 집에 홀로 핀 개나리가 결코 고독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개나리 쪽으로 햇살이 비춰주며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없는 외딴 집의 노랑은 그 색깔에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까? 

주광과 보조광, 수업시간에 촬영한 사진이다. 물론 백그라운드에는 라이트가 비춰지지는 않았다. 필라이트가 그곳까지 영향을 미쳐 디테일이 살아 있다. 빛의 대비를 통해서 인물의 성격을 읽을 수 있도록 의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물사진 촬영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백그라운드와 인물의 의상, 그리고 표정까지도 같은 느낌이어야 의도한 사진을 표현함에 있어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이 사진은 조리개가 11정도 되다보니 실내 스튜디오에서는 인공조명만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실내 스튜디오이다. 실습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한명은 실제 찍고 있고, 또 한명은 찍은 다음에 자신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촬영한 것은 아니나 주피사체를 촬영하면서 백그라운드로 등장한 피사체들이다. 이 사진은 스트로보의 모델링에 의한 빛을 이용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이때 실내 형광등이 천장에서 떨어지며 필라이트를 만들어내며 톤이 풍부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빛이 어둡기 때문에 조리개는 열리고, 스피드는 떨어지며, 감도는 높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3가지의 조건은 노출의 트라이앵글이라해서 적절한 배합이 중요하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세련된 배합을 통해 양질의 결과를 얻어내곤 한다.

이 사진이 나오기까지는 여러가지 의도가 포함된다. 여기서는 빛만 이야기해야 하기때문에 모델이 갖는 심리적인 시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포즈도 여성스럽게 하기 위한 제안도 그만, 우측에서 들어온 빛이다. 억지로 패턴을 말하자면 버터플라이와 루프라이트의 혼합이다. 원래 비춰진 빛도 빛이지만 여성의 포즈에 의해 얼굴이 오른 쪽으로 돌아가면서 패턴이 틀어진 것이다. 물론 우측 벽면의 밝기는 모델에게서 시선을 빼앗아 간다. 

달리는 기차안임이 컵에 쓰여진 ktx라는 글자가 말해준다. 구겨져 질감의 오묘함을 보여주는 컨텐, 옷걸이에 걸린 외투 그리고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가 자연스런 스냅샵임을 말해 주고 있다. 자연스러움도 조명에서는 의도해야 한다. 그냥 막 찍어낸 것을 자연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다. 프로는 모든 사진에 자신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주입한다.

주도적이지 않은 사진에는 자신의 의도가 덜 들어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면 그럴만한 환경이 구축되어져야 한다. 이 사진처럼 수업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남들이 찍고 있는 모델을 빼앗아 따로 자세를 취하고 빛의 방향에 맞게 방향을 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타인이 만들어 놓은 설정일지라도 그것에 의도한 것들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사진을 찍으면 다른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이 사진은 카메라의 오른쪽에서 정오의 태양이 달려들고 있다. 정오의 태양은 여성에게는 협오스런 광원이다. 이유는 그런 시간대에 촬영한 자신의 얼굴들이 만족스럽지 않게 나왔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도망치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들의 과거 경험 속에는 이 시간대에 촬영한 자신의 사진 결과물을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간대가 무조건 혐오시간은 아니다. 어디에 빛을 두고 어떤 포즈와 표정을 지으며 모델을 촬영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진다.

바디랭귀지의 대표적 이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빔프로젝트가 정면에 빛을 뱉어내고 잔광으로 발표자의 몸을 비추고 있다. 그 잔광은 벽명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재미난 사진을 만들었다. 발료자의 몸과 얼굴에는 각각 두개의 광원이 붙어있다. 몸이 벽면에 그림자를 만든 것은 빔프로젝트이고, 얼굴에 비춰진 그림자는 빔프로젝트를 화면에 구사한 빛이 다시 반사를 이뤄낸 것이다. 광원은 하나인데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태양과 너무 많이 닮은 점이 많다.

보디빌더의 고난이 흔적처럼 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빛은 실수처럼 보이지만 의도라고 하면 실수가 아니다. 빛이 허벅지에서 카메라에는 플레어를, 모델의 몸에는 강력한 질감을 만들어낸 키라이트이다. 필라이트를 활용하여 머리결과 너무 강하게 보일 수 있는 질감을 조금은 상쇄시키기 위해 만들어 졌고, 보일 둥 말 둥이지만 엑센트라이트가 좌측 팔뚝에 비춰지고 있다. 필라이트가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보디빌더의 몸은 평범해지면서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대낮의 그림자가 강력하다. 그러나 자연광을 찍었지만 그 이미지가 결코 강한 콘트라스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논바닥에서 반사되는 밝은 갈색이 사람의 얼굴과 몸을 비추며 따스한 광질을 형성하고 있다. 약간 낮은 자세에서 찍힌 사진들은 움직임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 우측에서 내려온 태양광은 반대쪽에 강력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지만 카메라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톤은 결코 강한 대비인 것만은 아니다.

농부에게는 자가용이다. 셀러리맨에게 직장은 도심이지만, 들녘이 농부의 직장이다. 들녘으로 나가는 자가용이다. 순광이 그들에게 잔잔함을 부여하고 있다. 안쪽에 보이는 어둠은 편안한 휴식을 말해주고 있다. 순광을 단지 평면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농부의 삶이 묻어나고, 새 생명을 완성해 내는 도구로 그 무게감을 더해 줄 수 있음에 이 빛 또한 의도적 일 수 밖에 없다.

빛은 사진에게는  생명이다. 생명을 구걸하기 위한 척박함을 극복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 바로 어베일러블 라이트(Available Light)를 구사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프레임 속의 빛이라면, 그것의 존재는 과대평가해도 과하지 않으리라. 과학의 힘이 고감도에서의 퀄러티를 보상해주는 시대가 온다면, 잔광까지도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져야 할 터이다. 그 시력은 현실적인 시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것은 학습에 의해서 완성된다. 사물을 꽤뚫는 시선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던져 줄 것이다. 더욱 사진찍기의 묘미를 극대화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어베일러블 라이트(Available Light)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