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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낙엽이 주는 교훈, 그리고 철학.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우연은 없다. 필연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가수 노사연은 노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에 그건 진리다. 그렇다. 우연이 아니다. 낙엽이 딩굴고 있고, 나에게 잡힌 그 순간 그들은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닥의 색감이 닮은 것들과 어울려 있다. 붉은 단풍은 같은 색깔의 담장에서, 녹색의 이파리는 이끼낀 곳에 주저앉아 속삭이고 있다. 사람도 끼리끼리 모여다니듯, 낙엽도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은 코드라고 한다. 


두장의 사진으로 색깔의 다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사물을 '나와 그것'으로 규정짓 곤 한다. 그러나 나는 '나와 너'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나와 너, 그것은 사물에 대한 무한 관심, 휴머니즘적 발상의 시작인 것이다. 비온 뒤, 햇살이 담장을 비추고 있다. 나뭇잎에 보여지는 중심축으로부터 나뉘어진 지배력은 강력한 중앙집권적이다. 장정의 팔뚝에 살아난 힘줄처럼 강력하거나 섬세함으로 지속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늙는다. 같은 이치로 현란한 의상을 입었던 잎들이 변화되고 있다. 겉에 보여지는 것은 화려한 의상이라면 그 원형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잎에 묻어난 물기는 삶에 대한 갈망으로 비춰진다. 또한 희망이다. 윤회를 꿈꾸고 있다. 그 표면에 젹셔진 촉촉한 색감의 변화는 인간의 오묘한 감정과도 같다. 

꽃잎에 떨어져 시들어가지만 그것이 마냥 슬픔만은 아니다. 환생을 꿈꾸는 모습에서 인생의 지혜를 가르친다. 가을엔 낙엽이 일상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낙엽 또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존재한다.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손금처럼 나뭇잎에 그려진 줄기모양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비슷할 뿐 같지는 않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들처럼. 착각이었던, 전부 같을 거라는 무관심이 더욱 낙엽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은 상실에서 온다. 그 상실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짐이다. 그런 무관심이 세상을 병들고 힘겹게 만든다. 이제부터는 신발에 채이는 돌뿌리마져도 다정한 눈빛으로 봐야할 때다. 내가 그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시작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현재 우리에게 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 필연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산의 소나무보다는 산맥을 보라고 타이른다. 그러나 때로는 소나무 껍질의 상처난 부위에 송진의 질감이나 송악가루의 향기에 코를 박고 느껴봐야 한다. 솔잎이 떨어져 바닦에 가라앉은 그런 것에서도 오감을 확장해야 한다. 이 사진에서는 나무와 나무가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에는 신비로운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전체가 아닌 한 잎에도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낙엽은 변신의 귀재다.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적극적으로 변신한다. 물론 사진의 테크닉으로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주인공은 딩구는 낙엽이다. 조명감독은 구름낀 하늘이며, 엑스트라로는 바람이 출연한다. 액션! "역광이 스산한 바람소리를 비춰주며, 낙엽이 놓인 자리에는 최소한의 빛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이 영화는 이렇게 촬영되었던 것이다. 카메라의 흔들림은 낙엽을 기준으로 반대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런 착각들은 보는 이를 새로움으로 포장한다.

아무튼,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당신에게 멋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