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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환영(illusion), 존재자를 찾아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illusion, 환영이다. 음악가, 화가, 사진가 및 문학가를 비롯한 모든 창작자들이 활용하는 방법이 바로 환영이다. 환영은 애써 피하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관문과도 같은 것이다. 과정은 오감으로 시작되지만 결론은 시각으로 매듭지어진다. 냄새나 소리 또한 머릿 속에서는 연관 검색어처럼 이미지로 완성된다. '본다'라는 의미의 아우라는 모든 부분을 관여한다.애타게 갈망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그것. 숨바꼭질처럼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 일행은 한성백제의 한 존재자를 찾아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가을 햇살의 환한 미소는 존재자의 자취를 감춰놓았다. 이럴땐 으레히 찾아가는 곳은 바로 그를 모셔 놓은 사당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만남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가 떠올랐다. 화려한 벽지는 고흐 자신과는 다른 의미로 고갱을 그리는 부제로 나타냈으며, 의자위에 놓인 촛불은 고흐가 옆에 있음을 표현했다. 그것은 희망이었으나 고흐는 그가 옆에 있음에 대한 환영영을 느끼고 있었다. 불빛을 통하여 그의 벗, 고갱의 부재를 건재함으로 납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색감이나 형체가 존재를 대신할 수 있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촛불만큼 존재함을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고흐의 환영 속에서 고갱은 상존하도록 촛불의 흔들림을 존재함으로 귀결시키기에 이르렀다.

낮은 채도가 과거를 음미하지 않아도 된다. 피하여 애를 써도 관자의 입장은 적극적으로 표명되며, 계속 그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서서히 그 잔잔함은 우리를 과거의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 현실의 가을 빛의 강함도 문을 통과하며 소프트 박스의 디퓨져처럼 부드러워졌다. 연하게 비춰지고 있던 내부의 생명력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더듬이는 그 존재자를 더듬어가고 있었다. 빛이 점점 흐려지는 그곳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그것은 그 존재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함이었다. 고흐의 촛불 하나가 존재자를 의미하며 자신의 고독감을 역설했다면, 사당안의 두개의 촛불은 의미하는 그 무엇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결코 외롭지 않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고흐는 자신의 내면에서 만들어낸 감정이었다면, 한성백제의 존재자에게 내면은 외부 요인에 의해서 생성된 갈등이었다. 그러나 두개의 등불은 결코 그가 혼자가 아님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존재자가 기거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단청이 색감을 잃어가고 있었고, 바닦의 투박한 질감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더욱 환영을 현실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존재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그 시대의 강한 의지를 가진 아우라를 존재자의 형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역사의 상황을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고흐의 고뇌어린 표정이 환영을 찾아가는 나에게 길을 안내했다. 고흐와 나는 시간의 격을 깬 시점에서의 벗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환영(illusion),  존재자를 찾아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