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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보는 사진에서 읽는 사진으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자연은 항상 말을 걸어온다. 유혹의 속삭임처럼. 뻔한 일상, 그냥  스칠 수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왜'라는 물음은 답을 요구하고, 그 물음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존재는 물음에 의해서 존재한다. 사진은 사각의 프레임 안의 것만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의 것으로까지 물음표를 던지며 생각의 틀을 확장해가는 시도가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모두를 믿을 수는 없다. 항상 물음에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절한 리듬감이 필요하다. 색감의 변화, 흔들림, 그리고 장면이 나의 카메라에 잡힌 이유 등의 생각을 시작으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빨래터 아낙들의 수다처럼 흥미진진함을 기대하며.

뒷자리에서 차에 기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올림픽대교를 지나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보쇼!'라고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였다.

차 안에서 책을 보면 어지럽다. 그런데 차창밖 먼곳을 바라보면 말끔해진다. 그것은 시각차때문이다. 우리 삶과도 닮아 있다. 삶은 혼돈과 선택의 연속이다. 지금 처한 일들이 누구보다도 나에게 제일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것이 바로 이 사진에서 가꾸운 곳의 이미지가 흔들림이라는 모습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과 같다. 멀리를 바라보면 또렸하다. 멀리 보이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표현하고, 가까이 있는 흔들리는 이미지는 주관적으로 말하고 싶다.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으로 비유하면 너무 개인적일까?

이 사진에는 대비를 통한 시선 끌기가 일품이다. 올림픽 대교의 탑이나 고층건물도 자그마한 가로수보다 작아 보인다. 크기에서 오는 중압감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산의 소나무가 아니라, 산맥을 보라는 말처럼 전체의 흐름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떨어진 태양을 반경으로 피어나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대비와 접점에서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의 화폭은 한점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누군가는 말했다. 흐림의 환영은 유토피아이며, 선명한 원경은 현실로 느껴진다고. 불확실성의 흐림은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유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서 이다. 인간에게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에 무수히 많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무수한 욕망! 아마도 그것이 존재하기에 퍽퍽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동문서답일지 모르는 '사물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의 엔진을 달련하고 있다.


보는 사진에서 읽는 사진으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