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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나의 과거를 기억하라. 한 장의 사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트레킹이 뭐냐. 네이버의 지식백과에 물어보면 나온다.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 들과 바람따라 떠나는 사색여행' 이라고 적혀있다. 포럼참여차 오사카를 들렀다가 일행들과 떠났던 트레킹이었다. 사전적 의미중에 '사색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정신없이 걸었고,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이라고 하기에는 뻔한 길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트레킹이라는 원론적 의미를 흉내내기만 한 도보여행으로 본다.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내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뭘 할까. 

요즘 나에게 화두다. 강의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브레인 스토밍의 대주제이기도 하다.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유추하며 읽어내는 일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뻥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 진짜는 무엇이며, 가짜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현재가 일루전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물론 이 말은 좀 오버이기 하지만 해석여하에 따라서 많은 것들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진리와 과학적 데이터도 새로운 것들이 끼어 들면서 그 내용을 번복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우리는 절대지식을 규정할 수 없음도 자주 깨닫곤 한다. 고로, 우리가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로 화기애애해지는 것 또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자는 의도일 뿐이다. 지금은 그렇다.


오사카 근처다. 산과 들이 보이는 곳을 트레킹하다가 만난 장면이다.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배려하기위한 미러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나에게 붙잡혔다. 차만 보고 다닐까? 나는 1차적 차원으로만 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걸어가면서 일면에 앞과 뒤를, 때로는 옆쪽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도안된 물건임에 틀림없다. 카메라의 핀은 미러에 맞춰져있고 먼저 가고 있는 사람과 들녘에는 포커스를 주지 않았다. 푸옇게 나간 피사체가 흔들림을 더하여 시야에 들어온다. 들어온다 손 치더라도 시선에 외면당하가 일쑤다.

뭉게구름이 더욱 선명하게, 비슷하지만 통제받은 듯 보이는 집구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뻔히 바라봤다. 화면속에 비춰진 장면들은 나의 눈높이와 방향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갖음에 따라서 사물이 달리 보인다고 말한다. 그럼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와 비슷하다는 논리다. 마음갖음과 시각은 같다. 상호작용을 한다. 시선의 위치에 따라서 보여지는 것도 다르니 마음에 영향을 다르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다르면 시각도 달라진다. 또한 시각도 마음을 바꾼다. 뭔가 엉킨듯한, 논리적이지 않은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나 자신을 변명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앞만보고 살아왔다. 여유라든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관성의 법칙처럼 습관적으로 살아왔던 나의 삶의 패턴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여기에 있던 미러는 나에게 인생길에서 뒤돌아 볼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미래의 비전에 가려져, 아름다운 추억을 잊고 살았다고 봐야할 듯하다. 앞 못지 않은 뒤의 이야기도 나의 삶에 긍정적이고 행복한 느낌을 던져준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전적 글쓰기를 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 심리인 자신에 대한 관심의 발현이다.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나, 그것은 항상 모든 이야기의 화두가 된다.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우연히 만난 길가에 세워진 백미러가 나에게는 많은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해준 은인이다. 원론적으로는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길의 이정표이지만, 나에게는 삶을 권고하는 결과가 되었다. 언제 다시 이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듯하다.


나의 과거를 기억하라. 한 장의 사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