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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커뮤니케이션의 완성, 현대해상 강의를 즈음하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새로운 것은 설렘반 부담반이다. 교육담당자들의 새로운 과정의 런칭도 그렇다. 새가슴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확신도 강의장의 분위기에 따라서 당락을 거듭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촉이 있는 담당자들은 과감하게 저지른다. 이번 강의제안이 그렇다. 커뮤니케이션 강사들은 많다. 그러나 식상하다. 한 얘기 또 하는 느낌, 그래서 사진이라는 컨텐츠를 활용하는 나의 강의를 요청한 것이다. 나의 대답은 '잘 했다'이다.

이번 포토테라피 강의는 기존에 '커뮤니케이션 강의'을 대체하여 편성한 것이다.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새로운 환경, 아니 세상이 그렇게 급변한다. 새로운 동료들과의 관계는 두려움이 아니라 '알아가는 재미'로 바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나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알고 있다는 착각이 더욱 서로를 힘들게 해왔다. 의식이란 체험을 통하여 변화된다. 감동적인 글귀나 명언이 아니라 서로 마주하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의식이 스스로 바뀐다. 이 강의가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제목을 어마무시하게 달았다. 사진의 조건, 커뮤니케이션의 완성! 누구나 잘 안다는 사진의 새로운 사실들로 강의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나와 남은 다르다. 다른 환경, 다른 성향! 무조건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니, 같은 사람이 없다. 비슷한 사람도 없다. 무조건 다른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모두가 행복해진다. 문제의 발단은 자기의 생각에 세상을 덫씌웠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어깨동무. 이런 세상이 올까? 모두가 행복한 세상! 오지 않는다.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산다. 이런 결과를 향해서 과정이 필요하고, 그러기위해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결국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이런 풍경이 가능하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산다, 자식을 위해 산다? 결국은 나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솔직해 지자. 어짜피 인간은 이기주이자니깐. 이것까지도 인정하면 이야기는 끝난다.
 
*강의는 커뮤니케니션에 집중한다. 명명하지 않는다. 참여 속에서 그것을 터득해 간다. 체험은 직접 경험을 말한다. 나 자신이 그 안에서 감각한다. 다른 방식에 의하여 체험하는 것이다. 사진은 '한정된'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로 불리운다. 그러나 시각을 우선으로 하는 체험이 피부로 체감하는 시점까지 인도하게 된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 들이는 모습을 접하게 되는 순간까지를.
 
부부이야기를 하자. 한 부부는 자신들의 딸을 각자 찍었다. 주제를 던져주고 찍었지만 너무 다른 시선으로 사진이 찍혔다. 물론 설명은 더욱 더 빗나갔다. 서로는 놀랐다. 30년이상된 부부가 그것도 자신들의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달랐음을 인정해야 했다. 부부도 그런데 하물며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들은 더욱 다른 것이다.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한다. 나 자신을 인식하게 하고,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게도 만들어 준다. 사진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를 되뇌이게 한다. 몇시간만에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으로 바뀐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의는 마무리되어간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바꾼다. 맞다. 인간이 카메라을 만들었지만 카메라가 찍어낸 사진이 사람을 바꾼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꿔 놓는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일상 속에서의 깨달음, 사진이라는 익숙한 도구를 활용하여 사람들은 웃을 수 있다. 장담한다. 이것이 나의 강의의 매력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완성, 현대해상 강의를 즈음하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