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2012년 봄, 강남구청에서 구민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좌를 열었다. 강좌명은 “포토테라피”였다. 사진을 찍어주어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은 포토테라피스트인 내가 자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강좌는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얻어 가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다양한 분야에 있었던 사람들이 멋진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모여들었다. 나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마다 다르게 찍어내는 사진들을 보면서 각자의 생각이 다름과 자신이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 더 추가하면 강의를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했다.
사진 속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그 속에는 찍은 이의 생각이 있고, 보는 이의 생각도 있다. 또한 영혼을 맑게 하는 기운들로 가득 차있다. 상상과 회상, 이 둘에게 사진은 많은 것을 제공한다. 경험을 기억하든,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해 내든, 사진은 머릿속을 온통 후벼 파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공간이 주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안에는 수많은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화가의 상상력 이상으로 많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자기의 스타일로 골라내어 만들 수도 있고, 같은 것을 찍어내더라도 다른 모양을 낼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경험과 그로부터 유추되는 창작적 발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두 사람이 카메라를 꺼냈다. 좌측의 작품은 가느다란 줄기까지 섬세하게 하늘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여성적인 터치이며 연녹색을 즐겨하고 싱그러운 젊음을 만끽하고자하는 이의 사진이다. 우측은 사진은 한여름의 강인한 햇살이 렌즈를 통과하여 힘찬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남성적인 강인함을 표현한 것이다. 햇빛의 투과를 나타내고, 싱그러운 봄날의 기운을 표현한 것은 촬영한 사람의 의도임에 틀림없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곳을 향해 사진을 찍었는데도 이런 느낌의 차이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외형과는 달리 내면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자유로운 창작적 꿈틀거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두 사람 모두 여성작가라는 것이다.
매달린 꽃송이는 같다. 그러나 어떤 생각으로 담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렌즈의 화각, 방향, 피사계심도, 노출 그리고 또 무엇이 다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꽃송이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의좋은 형제들처럼 보이는 사진에는 다정함이 묻어난다. 쫙 벌린 주둥이에는 목청껏 노래라도 부르는 듯 리듬감이 덧보인다. 인간적인 면이 강한 사람일 것이고, 또 한 장은 사진은 음악적인 감성을 가진 이의 작품으로 보인다.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찍어낸 것이다. 세상의 창조물은 동일하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생각들에 의하여 차이를 갖는다.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두 개의 그릇이 있다. 그 안에 행복과 불행의 음식은 스스로 담아가는 것이라는 그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빛과 그림자.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그 물체가 눈에 들어오면 그림자는 반듯이 있다. 빛과 그림자는 바늘과 실처럼 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도 빛이며 그림자이다. 사람들은 그림자의 의미를 가벼이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빛은 존재를 가르치고 그림자는 그 높낮이를 통하여 입체적으로 그 질감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우측의 사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늘 밑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녀는 몇 년 동안 부모님과 헤어져 시골에 있는 조부모님 댁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사진 찍기의 진수는 일상의 작은 조각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냥 스쳐 지나쳤던 것들이 자신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는 날, 다른 세상으로 초대를 받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찍어낸 사진은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자신만이 그것을 평가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 개념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겠지만 사진의 감성에 대한 부분을 놓고 객관적인 잣대를 드리우는 것은 위험천만의 일이다. 물론 작품을 출품하고 그 주최 측에서 마련한 기준을 가지고 잣대질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사진은 이제 작품성의 수위를 떠나서 자신과 만나는 것이며 타인과 소통하는 도구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의사소통의 많은 부분이 이미지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 수많은 글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 한 장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에는 글자가 적다. 이미지 몇 장이 그것을 대신한다. 얼마나 강력한 설득력을 보였는가? 이제 그가 했던 것들이 많은 부분에서 공감되어지고 있다.
나 또한 강의나 제안서는 몇 컷의 이미지로 대신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듣는 것보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옛 성현들은 이미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들의 선견지명,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본 작품은 이번 강좌의 수강생이었던 구윤희, 김소희, 손희숙님의 작품이다. 우연히 같은 소재를 작품화했기에 글의 소재로 삼게 되었다. 감사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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