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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금병산행, 김유정을 만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루소는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만 믿고 그냥 떠났다.
자연에서 배우고, 신성한 자연을 찬양하고, 자연속에서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과오를 참회하라는 뜻이었으리라.


그 자연에서 절대고독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떠났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의 중턱, 그 자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10월의 어느날이었다. 가을은 색깔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노랗게 익어버린 은행잎은 파란 하늘의 백그라운드속에서 화려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오라 했다.


찾아간 곳은 예술가의 혼이 깃든, 김유정이 살았던 곳이었다. 금병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그곳에는 평화가 흐르고 있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위해 산속으로 향했다. 금병산! 산세가 완만하고 새소리 지적이며, 단풍이 화려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단아한 구석도 보였다.  인간이 삶을 깨닫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산의 초입으로 걸어 들어가니 솔향이 그윽하게 분위기를 잡고 있었고, 다람쥐와 청솔모가 사람을 따라 다녔다. 익숙하다는 뜻인지 바로 옆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니 솔방울같은 것이었는데 조금 달랐다. 쫓아가니 그것을 내동댕이치며 달아났다.  그것은 바로 잣!

숯속에 나무로 만든 의자들이 있었다. 팻말에는 '금병초등학교 야외교육장' 이라했다.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가끔일지라도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적인 시골아이들에게 부여되는 보너스같은 것이었다. 가지고 간 캔맥주를 꺼내들었다. 안주는 솔향, 눈요기는 쭉쭉 뻗어 올라간 잣나무의 화여한 몸매.


풍광에 빠져 긴 휴식을 취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단풍의 화려함은 유명화가의 물감으로도, 사진가의 카메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공기의 신선함을 패 속 가득 담았다. 답답한 도심에서 가끔씩 꺼내 들이마시려는 요량이었다.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어디인지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그만한 새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에게서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 안내문에는 90분이라는 거리를, 우리는 3시간이 넘게 올라갔다. 정상너머에는 춘천이 보였다. 자연과 너무 대비가 되는 빽빽한 아파트가 눈에 비춰졌다. 가을 산 정산의 정취와 사뭇 달랐다.

감탄의 음성을 연달아 내품으며 우리는 하산을 했다. 금병산은 소설과 김유정과 친한 친구였다. 나무이름이며, 고개이름에서 그의 소설속 장면들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가는 길마다 남은 km수를 가르쳐주었다. 와이프를 버리고 오기에는 길이 너무 찾기 쉬워서 적합하지 못했다.

정상에서의 맛본 기분과는 달리 마을로 내려오니 어둑해지고 점심을 굶은 탓인지 눈에 뵈는게 없었다. 식당을 찾았다. 우리는 어김없이 김유정 소설의 '봄 봄'에 나오는 점순이의 이름을 본딴 점순네로 향했다.


닭갈비며, 촌두부, 부추를 갉아서 붙인 부추전에다가 강원도 막걸리가 땡겨서였다. 주인을 만났다.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을 봤다했다 대우가 달랐다. 말하지 않아도 착착 부족함없이 음식이 나오고 있었다.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목까지 차오르도록 먹었다. 노곤하던 다리와 온몸의 저림이 음식들을 스스럼없이 받아 들이게 했다. 가을이 깊어서인지 동치미가 재맛을 내고 있었다.  루소의 말한 자연처럼 그곳에서 만들어내 고유의 깊은 맛을 내고 있었다. 식당을 나오려니 신뢰감있게 보이는, 잘생긴 여주인의 남편까지 인사를 했다. 시골의 정이 음식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전이가 된 듯하였다.



춘천의 닭갈비의 유래는 김유정이라고 본다. 김유정이 죽기 10일전에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에도 나오지만 건강을 위해 닭을 과먹어야 겠다는 의지로 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동상에는 그 닭을 바라보는 김유정의 애절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자제가 다 그렇지만 이곳도 어김없이 김유정을 추모하는 문학관옆에는 행사를 하기위한 참가자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 다음날 대회가 있다는 프랭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구기자의 빠알간 색이 섹시한다. 진한 녹색잎이 가을에 아랑곳하지 않고 튼실하게 자기 색을 지키고 있었다. 그에 반해 산 중반에 만났던 말라 비틀어진 이파리와 대조적이었다. 쓰러지느냐 대적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느냐는 그의 선택이다. 사람도 그렇다. 이기느냐, 지느냐? 극복하지 못하면 즐기라. 


서비스 메뉴다. 당근 새순의 쌉싸름한 맛, 영양부추의 그 영양능력, 반가움을 표하며 가져다 언져 준 밭에서 직접 재배했다던 냉이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무우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배는 고프고 신선하게 그 자태를 자랑하던 무우가 그리도 섹시하던지. 서비스를 받는 김에 용기를 내어 부탁했더니 텃밭에 심어놓은 무우를 직접 뽑아다가 줬다. 배추 뿌리 맛과 무우의 매콤한 맛이 합쳐져 그 전에 맛보지 못했던 맛을 느끼게 했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식당앞에 뽑아다준 무우를 먹어서 인지 여기저기서 트림에 방귀를 끼느라 정신이 없다. 기분 좋은 트림과 시원한 방귀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전해졌다. 아내가 걸어가면서 음악의 장단이라도 맞추듯 '뿡뿡' 끼어대고 난리다. 그것은 방귀를 터준 나의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삶의 여유는 내가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자도 나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찾아가지 않는 한.
루소의 자연이 오늘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자 한다. 인생 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