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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작가에게 고집은 고단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람들은 누구나 흥미로운 일을 찾아 헤맨다. 그것이 관심이다. 그것에 따라서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나의 강의 중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단연 '자신을 찾아서'라는 내용이다. 나는 글이나 관상학으로 사람을 떠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찍은 사진에서 그를 찾아 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일부러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선입견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를 통해서 쉽게 가는 것은 싫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지 않기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상대의 관심에 눈높이를 맞추기위해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한다. 일정한 보폭을 걸음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나의 고집스러움은 항상 나를 고단하게 만들고 그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것을 즐기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느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 느낌은 몸에서 우러나오는 듯하다. 


그럼 이 사진은 누가 누구를 찍은 것인가?  나다. 뒷모습은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진 찍을때 오버 액션하면서 스스로를 몰입시키는 나! 나의 키는 165cm이다. 사진가로서 아주 겸손한 사이즈이다. 사이즈가 더 커지면 커질 수록 문제가 생긴다. 보통,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 자세에서 그냥 셔터를 눌러 댄다. 그럼 그 보다 작은 사람은 위에서 밑으로 눌러 찍는 것이다.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눌러서 사이즈를 줄여 넣곤 한다. 이 사진이 나를 눌러서 가뜩이나 작은 키를 작게 만들어서 흉하게 만들어 놨다. 기분이 언잖아지는 순간이다. 저 너머에 머리카락이 약간 보이는 것이 여자를 찍고 있고, 카메라도 없이 손으로 프레임을 만들며 상대를 현혹시키고 있다. 나의 스타일이다. 정신이 무장이 되어야 셔터를 누르는 나의 스타일이다. 일단 모델의 정신을 집중시키고, 그것이 완성되면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서로가 소통을 한다. 내가 즐거워야 함께 하는 사람도 흥겹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무표정한 얼굴과 무덤덤한 몸짓이 과연 찍히는 사람에게 어떤 감흥을 던져주겠는가? 나는 주도자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다. 찍히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시한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그릇된 판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문가이다. 그가 찾아온 사람은 프로지, 자신이 원하는 말만 잘 듣는 아마추어를 찾아 온 것이 아니다. 그는 나에게 맡겨야 한다.  그 다음에 완성되는 창작적 결실에 대해 2차적인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모델이 자기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말 잘듣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게하고 부족하면 포토샵으로 수정하라고. 그러나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특히 강하다. 이유는 나보다 나은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의 거래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의지이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에게 그 신뢰를 두텁게 하기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나의 노력은 끝없는 질주처럼 무한하다. 나에게 소통이란 말이나 글처럼 언어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몸짓처럼 비언어에 의해서 이뤄진다. 감으로 진행된다.

나의 스튜디오에는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빠진 그냥 "백승휴"이다. 나 같은 나가 아니라 원형의 나를 찾는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