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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깊은 심연, 황경원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묘한 사람. 그에게서 나오는 밝음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볼 수 밖에 없다. 문우, 아니 글에 대한 눈높이를 같이 하기엔 오만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수준 차이 때문이다. 어느 날, 대화 중에 사진 강의에 초대했고, 메카니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고 있었다.  나의 수업은 그냥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덧 그 시간이, 그 거친 논의가 새 생각을 만들어낸다고 좋아라 했다. 이제 메카니즘은 그의 사진을 구성하는데 문제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무던히 사람을 좋아한다던, 풍경에도 사람을 집어 넣어야 한다는 그. 두 권의 포토에세이집에 담긴 사진들, 약간의 우격다짐식 사진에는 가벼운 미소처럼 2% 부족한 사진들이 보였다. 이제, '할 말 하는 사진'이 완성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노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기다린 것도 아니다. 그냥 삶이 담겨있다. 그것이 좋다고 했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찰나를 노리지도 않았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그것은 버림의 미학과는 관련없는, 단지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부제같은 것들이다. 따스한 빛깔까지도 그를 닮았다.

그는 나이테를 비유했다. 그 나무가 지탱하기 위해 오래된 나이테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함을 노인의 사진을 통해 말해 주었다. 이 사진이 그 날 찍은 사진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고 미소 지었다. 수업시간이면 한시도 메모지에 손을 떼지 않는 이유가 이런 생각과의 겸침을 위해서 였을까.

   

함께 갔던 사람들의 사진에는 가을하늘처럼 파란 색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실수처럼 보이는 노출오버가 의도였던 이유는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 였단다. 그가 갈구하는 그 '사람'을 담아 놓고 있었다. 각자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말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아니 그 설명을 듣기 전에도 극명하게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이 보였다.

철조망, 스치고 지나는 생각처럼 아득했다. 준초이선생에게 여백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대화라고 했던 그 생각이 떠올랐다.  넓은 하늘은 언어요, 하얀 도화지요, 새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원형이라는 생각!

석양의 따스함이 그를 닮았다. 현실과 이상처럼, 물고기가 유유히 현실이 아닌 환영처럼 보이게 하는 그의 창법은 무엇을 설명하고 있을까? 몽환적이라고 하면 반문할 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 몽환은 다양한 사고의 전환이라고 말하고 싶다. 습하지 않아 보이는 마른 질감이 기분까지 청명하게 한다.


왜 일까? 불교의 윤회가 떠오른다. 이파리가 입을 벌린 것과 꽃잎의 색깔이 뭔가의 조화를 이뤘다고 말할 지 모른다. 약간의 붉은 색은 무한히 깊은 심연을 포함하고, 무언이 무엇을 만나는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 무게감이 어떤 아픔 속에서도 당당히 마주할 에너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출렁이는 물은 그 안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물 속에  비춰진 낮은 채도는 무한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는 포토샵을 싫어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살짝 색깔을 입혔단다. 이 사진이 그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찮은 것까지도 관심의 반열에 올려놓고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그의 표정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미술, 음악, 그리고 글과 더불어 다양한 이야기들과의 융합이 감성을 키우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하는 식의 겸손한 멘트로 조강조강 입을 떼곤 하는 그 말이다. 오늘도...

사진은 그를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선글라스의 색깔이 세상을 그 색깔로 덮어 버리듯, 그렇게 그의 생각으로 프레임은 채워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자기만을 생각한다. 그 당연한 이기주의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이제는 그 이기주의를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세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기주의자를 봤나, 황경원 작가!


심연깊은 황경원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