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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비오는 날의 사진찍기. 서울의 숲.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삶은 무조건 선택과 선택의 대결이다. 그 선택은 다시 이야기의 발원지가 된다. 인생은 이야기에 의해서 화려하게 구성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선택 하나가 이야기를 만들고, 인간은 그것을 곱씹으며 따분하지 않게 산다. 비오는 날의 출사는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다. 화창한 날도 있는데 굳이 비오는 날이라니. 출사가 있던 날, 적은 인원으로 진행하겠다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꽤 많은 인원이 참여하게 되면 여간 뿌듯한게 아니다. 또한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유는 그 사람들이 출사를 나온 의미를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오기 때문에 인파로 붐비던 공원이 한가해지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와 낯선 장면들이 좋았다는 이들까지 다양한 느낌들을 말해 주었다. 이 말은 어떤 칭찬보다 고래를 춤추게 한다.

대비, 이것은 사람의 시선을 끈다. 나와 타자라는 이분법을 통하여 풍경 속 사물들의 관계를 설정한다. 단풍이 들어갈 가을 날, 나무에 열매도 아닌 것이 붉은 색으로 진사들을 유혹하는 것이 존재한다. '나'라는 1인칭에 올려 놓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질감, 비오는 날은 항상 우중충하다. 기분이 다운 될 듯 보이지만 그렇치만도 않다. 그 질감을 찾아내고 나면 마음은 화창해진다. 목적을 달성한 성취감이랄까. 호위병들이 장군과 함께 급히 어디론가 떠나는,  도망자를 추적하는 움직임, 뭔가 긴박감이 뇌리를 스친다.

우산은 오브제이다. 현재 진행형임과 곁에 누군가 존재하고 있음을 가장하는 수단이다. 뻔한 공원의 일상처럼 밋밋할 수 있는 광경 속에 사건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비를 피하는 우산이 멋진 작품 속에서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대단한 매니지 먼트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늘은 항상 그냥 하얗거나 푸른 것이 아니다. 그 질감을 더듬는 과정 또한 탐정가의 집요함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을 갖는다.

아이의 마음이어야 시가 아름다워진다. 더 훌륭하려면 신의 경지와 합치를 이뤄야 한다. 작가가 창조한 작품과 담장너머 자연이 만든, 아니 신이 만든 작품과의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이분법적 시도는 사람들에게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커피숍에 앉아 출사에 이어 2부 강의를 진행하면서 적은 단어들이다.정적, 질감, 존재, 만남, 바라봄, 대비, 축복, 느낌, 정서의 간섭, 놀이, 집중, 환희, 집착, 가을, 표현, 기다림, 비움, 셔터, 만족, 여유, 반영, 나와 너, 모습, 사색, 사유, 유희, 낯섬, 일상, 권태. 학생과 선생이 따로 없이,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매력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언어들이며, 유희다. 내 마음 안에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화려한 의상, 기름진 음식, 보기 좋은 풍경, 값비싼 보석?  카메라 하나만 메고, 문밖으로 나가면 항상 우리를 반기는 정겨운 것들이 있다. 존재를 일깨워 주는 사진찍기야 말로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친구가 아니던가. 특히 기대하지 않았던 비오는 날의 오전은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비오는 날의 사진찍기. 서울의 숲.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