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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바티칸에서의 만남,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베드로 성당의 cupola에 올라 로마를 바라보다! 사방 대부분이 지평선이었다. 성당안의 웅장함과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미술관의 작품들이 나의 눈을 휘둥글하게 했다. 미켈란젤로의 흔적들이 그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곳.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며 겸손하려 했던 예술가들의 세계 속에서 위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인간에게가 아니라 신에게 보여주고자 만든 것임에 틀림없었다. 산 피에트로 광장을 바라보며, 긴 세월 많은 예술가들의 손길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베드로 성당 내부, 큰 것은 위대하다? 전부는 아니나 그 큰 것에 위대한 작업이 덫붙여지면 위대해진다 장엄함 속에 아우라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확신을 주게 된다. 타 성당하고는 다른, 뭐 어떤 것이 훌륭하다는 비교가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마무리를 지었다는 그의 손길이 느껴지는 베드로 성당에서 한 예술가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할 수 있는지 느꼈다.

성 히에로니무스다. 미완성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앞에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는 사람의 몸짓도 아트적이다. 완성된 수많은 작품들도 휙휙 지나치는 판국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성작은 안내자의 지시에 의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과연 그가 완성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이 미완성작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작가의 가치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기준은 변함이 없다.

라오콘이다. 미켈란젤로를 겸손하게 만들었던 그리스의 조각상 라오콘. 

코레지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르네상스 전성기 4대 천재화가를 든다면 꼭 끼워 넣어야 한다는 코레지오. 맹모삼천지교, 그가 예술가들이 경합을 벌였던 도심에서 활동했다면 예술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그, 그에게 부족했던 인물학적 소양이 그를 현재 우리가 평가하는 그 지점에 움크리고 있게 했던 것이다. 500년 전의 예술사에서 지금의 인문학적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의 후광을 비춰주는 진정한 아우라는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존엄에 가치를 두던 교황청에 페러디한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그 자태가 나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세월도 흐르고 기준도 변화한다. 

베드로 성당앞, 산 페에트로 광장에서 갈매기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조각군상의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듯한 환영.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추억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곳에 있었음을 말하고자하는가. 사진을 찍히는 순간 즐거운 표정을 가져야 함은 그 사진 속에서 그 순간의 표정에 의하여 그 기억을 긍정으로, 부정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진은 항상 기억을 찾아가는 이정표를 제공한다. 바티칸 궁에서 체험한 과거들이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사진가로의 삶에서 어떤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는 하루가 되었다. 


바티칸에서의 만남,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