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승휴 칼럼/Photo Essay

전주의 아침으로부터 순천의 정오까지의 사진과 생각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람들은 그런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만큼 공들여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여행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관광을 하는 사람과 사진을 열심히 찍어내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여행에 대한 기억이 오래 갈까? 이런 질문을 하는 내가 더 웃긴다. 사진가인 나의 입장을 이야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어떤 책에 통계에서 나온 말이기에 신빙성이 있다. 기억은 망각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여행지의 사진을 보면 그 곳의 대부분을 떠올릴 수 있다. 이상하면서도 대단한 일이다. 사진가들과의 3일간 기차여행이 3번째이다. 기차를 타고 풍경도 바라보고, 잠도 청하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기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곤 한다. 매력적이다. 다음 사진들은 여행 둘쨋날, 새벽 전주를 출발하여 순천에서 정오를 보내면서 만난 이미지들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운이 남아 있는 동안 쓴 글이다. 

어떤가? 과거스러운가? 물론 채도가 빠지면서 퇴색된 느낌의 오래됨 내지는 낡음이 보인다. 기와집이란 소재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낯선 기억으로 다가온다. 또한 아련함이란 표현기범을 썼다. 길을 따라 마지막 먼 곳까지 시선을 끌고가는 방법이다. 좌측으로 돌덩이의 크기에 따른 원근감이 길목의 마지막을 통과하여 내가 좋아하는 뒷산의 아스라함까지를 보여주는 시선말이다. 인간의 눈은 카메라와 닮아 있지만 프레임이 정해주는 구역설정은 더욱 정교하게 보여주려는 부분을 화면 속에서 재구성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것들을  의도하는 만큼 마음껏 보여준다.

지나치면 없는 장면이다. 이걸 무에서 유를 얻어낸 결실이라고 나는 말한다. 삐딱하게 서로 기댄 돌로된 사물, 이들이 보여주려는 그 무엇을 우리는 존재라고 한다. 오래된 친구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개념들? 더 깊이는 나중에... 시선은 뒤 벽으로 데려간다. 길이 황토로 되었더라면 완벽했을 것을 관리의 편리성을 위하여 공통의 길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길은 옆집도 똑같다. 약간씩의 흙이 묻고 기스가 좀 났더라면 이테리의 피렌체 골목같은 진득한 맛이 났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장인의 세련된 화법처럼 벽이며, 나무 문이며 그 앞에 풀무더기가 사물끼리의 어울림을 통하여 과거의 어느곳을 지정해주는 듯해서 좋았다. 의도된 자연.

애들은 따라하지 말라. 한적한 길를 틈타 길 건너 사진을 찍었다. 사진가들이 여행을 하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거기에 양념처럼 장날 물건을 팔러가는 아낙들의 몸짓이 더욱 그 정취를 말해준다. 시골스런 현장감과 우두커니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 카메라에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다. 가까운 거리 택시를 탈 수도 있다. 후덥지근한 날씨, 땀이 등줄기를 타고 연신 흐른다. 이들은 그걸 즐긴다. 버스를 탄다. 그리고 택시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여행은 두가지가 있다. 몸이 편안한, 또는 몸을 괴롭히면서 낯선기운을 느끼는 매력적인 여행으로... 뭘 택하겠는가? 

이런 곳은 태초에 없었다. 이유는 순천 정원박람회장이니깐. 만들었으니깐. 이런 말을 던지고 싶다. 가공된 자연, 자연보다도 더 세련된 자연스러움에 취하다. 이런 멘트를 날리면서 좀 씁쓸한 것은 이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기위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초의 자연이 이정도라면 관리가 아닌 자연이 자연 안에서 스스로 '자생' 되었으련만. 

바람이 분다. 현란하게 꽃잎이 흔들린다. 꽃은 보기는 좋으나 사진을 찍으면 별로인 것과 보기보다 사진이 잘 받는 꽃으로 나뉜다. 사람도 그렇다. 가까이 가면 좋아 보이는 것과 멀리 있으면 좋은 것이 따로 있다. 이 꽃은 멀리에서 어우려졌을때가 좋고, 가까이 가면 그냥 꽃이지 그렇게 개성있는 꼿도 아니었다. 그래서 풍광과 기와집 그리고 흔들리는 꽃잎을 함께 찍었다. 노오란 빛이 잔디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더욱 운치를 더한다.

나무가 윗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꽃잎이 떨어져 물가에  앉는다. 떨어진 꽃잎은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채도를 빼거나 더 확빼서 흑백으로 만들어 놓으면 바로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검은 돌위에 분홍의 꽃은 약간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준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찍었다. 조심스런 의도임에 틀림없다.

길가에 화단이 돌로 만들어졌다. 높이 올려진  화단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중앙에 피사체를 놓고 찍어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찍었다. 그늘인데도 하늘에서 천공광이 꽃이파리를 비춰주며, 보일 둥 말 둥이지만 헤어라이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찍었다. 대접받는 느낌, 고고한 학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말없이 세우고 있었다. 녹색 잎이 싱그럽고 하얀색과 선분홍색이 작지만 야무지다. 아이의 조잘거림이 가볍지 않고 뭔가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줘야 할 듯한 무게감이 있었다. 

이 사진들은 전주의 아침으로부터 시작하여 순천의 정오까지의 사진들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거늘 우리는 무시한다. 이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이건 자연이 할만큼 하다가 우리를 왕따시킬지도 모른다. 여행은 낯선곳으로의 방문이다. 그러나 이 낯선여행까지도 낯설게 맞이할 필요가 있다. 여행의 정체성을 더욱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사진마다 길지 않은 생각을 담았다. 공감이 관건이다. 그러나 공감이 중요하지는 않다. 이건 주관이니깐. 주관이 모이면 객관이 된다. 단지 조건이 있다. 상대가 공감하면 객관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개인적 푸념에 불과하다. 부디 객관적 공감으로의 샤우팅이 되길 바랄 뿐이다. 어법을 현재형과 과거형을 혼용했다. 그것은 현장은 과거이고, 감정은 현재의 것을 활용했기 때문임을 감안하길 바란다.


전주의 아침으로부터 순천의 정오까지의 생각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