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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Book 포토리뷰

<이웃집에 신이 산다>, 모르는 게 약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판도라 상자에서 미래만 나오지 않았다. 그랬으니 망정이니 그걸 알았다면 결과를 보고 시청하는 축구경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참말로. 내일을 모르며 답답하다고 하는 소리는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는 거.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봤다. 자코 반 도마엘 이라는 감독, 이름부터가 낯설었다. 그의 영화들은 특이한 생각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판도라 상자에서 희망까지 끄집어 냈다면 진정 희망은 사라졌을 것이다. 비전을 꿈꾸고 묵묵히 걸어가는 수많은 인간들에게 그 걸음을 멈추게 했을 것이다. 컴퓨터로 지루한 일상을 못된 짓을 해대며 풀어내던 아버지, 그 꼴을 보다못해 사람들에게 남은 수명을 뿌려대면서 이야기는 더욱 쇼킹일로에 접어든다. 그렇다. 남은 수명이 많던 적던 간에 안다는 것은 끝은 본 것이다. 끝이란 있으면서도 모르는 게 약인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영화의 내용을 미리 듣고 주인공이 어떻게 된다더라라는 식의 영화는 너무 식상해 버리고 만다. 맛있던 음식이 섞어버린 것과 매 한가지이다.

글은 지은이, 사진은 작가, 그림과 음악도 작가들에 의해 그 색깔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도 그렇다. 물론 나에게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구성에 의하여 선택하곤 한다. 훌륭한 감동과 명품배우들이 꾸미는 흥미진진한 시간이 가끔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한 가족이 과격한 가장과 함께 억눌린 채 살아간다. 자칭 신이라고 생각하는 괴팍한 아버지는 컴퓨터안에 뭔가를 쳐대며 낄낄거리고 있다. 그가 원하는대로 세상은 조정된다. 물론, 이런 기상천외한 생각을 표현하는 감독의 기발함은 관객을 새로운 세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신의 실재 유무는 접어 두고, 신화도 인간이 만들어낸 뻥이다보니 영화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나에게 와 닿았던 이 영화의 사건은 딸 에야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인간의 남은 수명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희망을 잃는다. 60살이상이 남았다면 과감하게 그 예상 수명에 맡기고 광란의 삶을 사는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한계를 규정짓는 것은 막힌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ㅎ이다. 망막하고 빛을 볼 수 없은 삶이 된다. 미래의 직업과 결과를 공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목표를 스스로 정해놓고 그 곳을 향해 묵묵히 행진하는 과정이자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직업인 사진작가, 이 직업으로 가능한 일들을 저지르면서 나는 산다. 아침이 되면 하루가 설레고, 새해가 되면 해야할 것에 대한 기대에 가슴 벅찬다.

모든 게 공개된 시점에서 기댈만한  기대나 종교적 신념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죽는 날을 대비하여 계획적으로 준비할 수는 있다. 남은 날 대비 남은 돈으로 하루 하루를 나눠서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쓰지도 못하는 돈을 벌기위해 벌건 눈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미래가 밝혀진 삶은 희망적일 수 없다. 상상할 수는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상이 마냥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영화 속에 나타난 내용으로든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신이라는 그 아버지의 행태는 권태였고, 무표정한 가족들은 자유에 대한 목마름의 표정들이었다. 이쯤되면 인간의 행동은 다분히 심리적 예상에 의하여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뻔한 영화보다는 기상천외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다양한 생각에 건조한 삶에 화룡정점일 수 있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 모르는 게 약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