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Therapy/여행 백승휴

600년 가문, 농암종택에서의 하룻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여행은 그렇다. 특히 하루를 묶는 건 더욱 그렇다. 저녁에 만나고 아침에 헤어진다. 사진에 글을 붙이면서 흐름을 보면 매끄러울 리 없다. 하루란 아침부터 시작하여 저녁으로 마무리한다. 순서를 뒤집어서 글을 쓰면 진정성이 훼손된다. 아무튼 이 글은 어둑어둑한 저녁 즈음부터 시작된다. 일반 숙소에 가면 관리인이나 주인이 키를 주고 잘 지내라고, 잘 왔다고 말하면 끝이다.  그런 단순한 과정이 아닌 계속 연관을 가지고 묻고 답하며 대화를 나눠야 하는 곳이 있다. 오래된 흔적과 역사가 있는 곳이기에 그렇다. 그곳은 종택이다. 그 이름은 농암종택!

아기사과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와 뭘 찍느냐고 묻는다. 당신도 동우회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 이름이 뭐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인다. 사진가들의 방문이 내심 반가운 게다. 매달린 아기사과의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소꼽놀이 하는 아이들 같다. 이것이 600년을 지켜온 종가집, 농암종택의 첫인상이다. 

50이 족히 넘은 어른 둘이 아이처럼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뭔가 재미난 일이 있는가보다. 사진 속 시선은 그들에게 쏠린다. 사실 그들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 뭔가 재미난 일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다. 어린 시절, 형제끼리 무엇을 차지하려고 난리치는 과정이다. 멍석을 까는 것이다. 영화의 첫장면이다. 이렇게 과거로 들어가는 과정을 이 사진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고택은 옛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딱이다.  

해가 저문다. 저녁나절 사진이 작가의 감정을 담고 있다. 시선이라 말하지 않고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그때 느낌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이다. 사진으로의 표현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다. 같은 환경이라도 그때 그때 다르다. 첫번째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건물에 묻어난 엷은 빛이 좋. 건너편 고택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빛으로 추정된다. 황혼과 방안의 빛이 조화롭다. 대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빛이 외벽을 비춘다. 희미하게 보이는 질감이 정겹다.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완성한다. 두 사진은 한 곳에 집중하고 있다. 느낌이 다르다. 왜 일까?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간의 감정때문일 거다.


대청마루에서 마당을 바라본다. 안개 자욱한 풍광이 괜찮다. 바닥에 엎드려야 보이는 화면이다. 한가로이 누워서 봐야 보이는 화각이다. 여유로운 자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모처럼 그곳에서 여유자적의 호기를 누린다. 한폭의 산수화라. 뭐 수묵화?

농암종택의 아침이다. 객이나 주인이나 밖으로 나간다. 아침 인사를 하는 거다. 밤새 안녕이다.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은 태초 세상의 탄생과 다르지 않다. 신비로움을 목격하는 것이자 감사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대낮의 작렬하는 태양의 모습이 아닌 초가을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배시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아침이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그걸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이다. 


두장의 사진은 시간차를 갖는다. 그 사이엔 특별한 이벤트, 아침식사가 있다. 종부가 차린 정성스런 밥상을 접한다. 방안에는 젊은 부부와 나이 지긋한 교수 내외가 자리를 함께 한다. 주인장의 이야기는 사람사는 흔한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인문학 강의처럼 들린다. 살아가는 지혜라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들린다. 세련된 조찬장이다.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시간이 두 장의 사진 사이에 끼어있다.

주인장이다.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그곳을 이야기한다. 그곳에 빠져 있다. 종택의 유명인이다. 그에게서 향기가 난 것은 욱하는 마음에 저질렀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완성된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동댐 수몰과 함께 찾아온 종택이전과 이곳을 만나게 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농암종택에서 하루를 머문다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삶도 함께 맞이하는 것이다. 인간은 미완이나 의지는 완성을 향한다. 마을의 풍광보다 그의 마음이 더 괜찮다.

일행이 유명하다고 예약했고, 다른 사람이 다시 추천했는데 같은 곳이라. 고민할 여지도 없이 찾은 곳이다. 이런 수순은 뭔가 잘 되려는 예감이 있다. 예상과 현실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인생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곳은 그렇다. 정신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자부심이 함께 한다. 1박 연수를 다녀온 느낌이랄까. 지킨다는 거, 명맥을 유지한다는 건 의리를 지키는 것이며 용기있는 행동이다. 용감한 부부! 그 뒤를 이을 자는 누구인가?

600년 가문, 농암종택에서의 하룻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