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나 그림이나 똑같다. 결국은 자신을 찍고 그리는 것이다. 카메라의 셀카(셀프 카메라)처럼, 화가들도 자화상을 그린다. 타인이 찍은 나, 사진가인 나도 어색하다. 목소리를 보면 이해가 된다. 자신을 목소리를 듣다보면 아닌 것 같다. 왜 일까? 나를 객관적으로 듣는 것이다. 나에 대해 보거나 든는 건 항상 어색하다.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림은 그린 이의 생각이 개입된다. 누군가의 시선! 설레거나 두렵다.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나다. 아들이 그린 두번의 그림을 감상해 본다. 그가 그린 나의 6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그가 본 모습 뿐인지, 아니면 그의 심정의 변화가 표현된 것인가?
2017년 12월 그리다. 고1 아들 백인혁이 그리다. 고뇌하는 사춘기.
2011년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그린 아버지. 유쾌한 시기였다.
2017년 12월 어느날, 아들은 아버지를 두번째 그린다. 첫번째 그림은 갸우뚱 뭔가 진지하거나 코믹한 모습이다. 2017년 현재 아버지는 아직도 진지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중후하다. 재미난 건 아들이 바라본 아버지의 객관적인 모습이라기보단 자신의 심경이 묻어 있다. 초등학생시절에는 그림을 재미나게 그리고 호기심으로 가득찬 시기였다. 자신의 호기심을 아버지의 얼굴에 담는다. 고1 이란 시기는 세상에 대한 반항, 자기 고민 중이다. 초딩시절처럼 재미난 시간은 아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세상을 향한 샤우팅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림은 자신의 심정을 그린다. 사진은 그런 심경을 세상 속에서 찾아내어 프레임에 넣는다. 극명히 다른 건 그림이란 것이 생각 안에서 찾아 그린다는 것이다. 6년이란 세월의 흔적을 두장의 사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에다 자신의 심경의 변화를 담아서 말해주고 있다. 그걸 읽으면 된다. 이제 부자지간의 대화가 시작된다.
아들 백인혁이 바라본 아버지 백승휴의 성숙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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