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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련/가족사진

제안: 가족사진으로 10년을 말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家族 10年史

가족은 기적과도 같다. 엄청난 확률속의 만남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대장간에 연장 없다는 말은 있지만 우리가족에게는 예외다. 해마다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10년이란 세월이 너무나 쉽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 첫째와 둘째의 탄생이 그렇다. 흘러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고 현실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뭐라 해도 가족이 최고다. 자! 그럼 우리가족의 역사를 훑어보자.

2001년, 의미심장한 해이다. 둘이 합하여 둘을 만든 역사적인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아들 인혁이의 첫돌에 대한 기억이 묻어있다. 감기로 고열이 나는데도 깔깔거리며 웃음 짓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03년은 추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가족은 따스한 느낌이 드는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가족의 웃음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이때부터 나의 사자머리는 시작되었다.

2005년 여름.

4층 석탑을 쌓았다. 아들이 사춘기가 일찍 온듯했다. 도통 웃질 않았다. 아마도 엄마 품에 안겨야 하는데 아빠가 싫었던 모양이다. 딸 진이가 치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멋대로 난 치아 때문에 돈 좀 썼다. 나의 노랑머리가 없어지고 지금의 머리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겨울.

창고에 넣어 두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냈다. 다시 겨울이 왔다. 산타복장을 준비했다. 고객들에게도 이벤트를 열어 사진을 찍어줬다. 아들이 웃긴단다. 코믹 버전으로 포즈를 잡았다. 지금도 집에 걸린 이사진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들의 빨간 신발은 내 장갑이었다.


2007년 가을.

항상 가족이 함께 나가면 아들이 잘생겼다고 한다. 나와 딸은 피해자다. 딸이 아빠 닮아서 그렇다고 원망을 한다. 그래서 그 해에는 딸이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 인화했다. 칼라 코드는 블랙이었다. 어둠속에 영롱하게 빛나는 나의 가족이 멋지지 않은가?


2008년 가을.

그해, 나는 빨강을 무척 좋아했다. 심지어는 팬티도 빨강으로 입었다. 팬티를 사느라 아내가 힘들어 했다. 수영복도 수경까지 빨강이었다. 온통 세상이 빨겠다. 아마 그해가 우리 부부사이도 제일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강색은 피를 생성시키는 색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때부터 아들이 반항하기 시작했다.


2009년 가을.

그해 나는 관상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인생 별거 아니었다. 웃고 살자는 말이다. 그래서 사진 찍을 때 서로 옆구리 긁어주며 웃었다. 신나게 웃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입이 아프다. 너무 웃었던 기억때문일거다. 아들이 이빨이 많이 빠졌다. 그래서 틀니를 해야 한다고 가족들이 놀렸다. 문래동에서 강남입성한 해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잘 적응을 잘해줘서 고마웠다. 이때부터 아내와 나는 너무 같이 있어서 그런지 얼굴만 보면 으르렁거린다. 아내는 호랑이, 나는 사자.


2010년 가을.

사진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카메라의 앵글을 바꿔 찍는 것도 좋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찍었다. 아들은 알 없는 안경으로 폼을 잡았다. 서로 엉켜서 찍었다. 가족애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아내의 히프라인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보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나보다 키가 클 것이다. 그럼 계속해서 누워서 찍어야 할 것이다. 진정 다사다난 했던 한해다. 최고로 머리가 많이 빠진 듯하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에 좋다니깐 내가 참는다.


제안: 가족사진으로 10년을 말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