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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백승휴/백승휴관련 기사내용

허우적 대며 자위하는 목마른 야생마였죠”

허우적 대며 자위하는 목마른 야생마였죠”

사진창작에 혼을 담근 사나이 백승휴 작가(백승휴스튜디오 대표)

  이창호기자(lch9856@skyedaily.com)

 

 
 ▲ 백승휴 작가(백승휴스튜디오 대표) ⓒ스카이데일리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백승휴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는 남다른 멋이 있다.
 
스튜디오임을 알리는 사진들이 밖에 전시돼 있을 것을 기대했으나 오산이었다. 간판에는 ‘스튜디오’란 글자도 없다. 단지 ‘백승휴’ 이름 석자만이 방문객을 맞이할 뿐이다.
 
백승휴란 사람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찾아오실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해서 스튜디오를 비울 때가 많아요. ‘어 저기 스튜디오 있네. 사진하나 찍을까’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은 오셨다가 사진을 못 찍고 실망만 하실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를 알고 직접 예약해서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알림 역할만 하는 간판을 내놓은 겁니다.”
 
사진작가 백승휴씨(46)의 담담한 설명을 듣노라니 취지가 이해가 갔다. 중앙대학교 지식산업교육원에서 인물사진컨텐츠전문가과정의 주임교수이면서 국제대학교 모델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백 작가는 이외에도 다양한 교육과 강연을 맡아 최근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인물사진만 26년을 찍어온 백 작가는 자신을 포토테라피스트라고 소개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 자신감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고 한다.
 
백 작가 스스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저작권 침해 소송을 진행하는 등 큰 고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
 
대학시절 시작해 26년째 사진의 길 걸어
 
백 작가는 대학교 1학년 때인 1987년 스튜디오를 하는 친척집의 일을 돕기 시작하면서 사진에 입문하게 된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을 하던 중 사진에 빠져서 26년째 사진을 찍고 있다.
 
언제나 사진 찍는 일이 즐거울 것만 같지만 백 작가의 말은 좀 다르다
 
“모든게 그렇지만 창작을 한다는 것은 항상 좋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는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항상 닥쳐오잖아요. 이런 것을 겪는 과정이 창의적인 정신을 갖게 합니다. 사진 찍는 일도 마찬가지구요.”
 
 ▲ 지난 7월 CBS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현한 백승휴 사진작가 <사진=백승휴스튜디오>

사진에 빠져서 살던 백 작가는 1995년 처음으로 인사동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낸다. 4년간의 인사동 생활을 돌아보면서 백 작가는 “뭔가 허우적거렸고, 자위했고, 목마름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야생마같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이후 압구정 로데오 거리로 옮겨 4년 가량을 지낸 뒤 2003년 청담동에 자리잡았다.
 
2001년에는 국제대학교 모델학과와 인연을 맺어 12년이 지난 지금도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왕성한 활동을 하며 다양한 작품도 내놓았던 백 작가는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창작을 하는 예술인에게 가장 아픈 일이라는 감성의 상처로 고생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기업에 저작권 침해당하고 법정투쟁 나서
 
2003년 경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백 작가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백 작가는 이 사건으로 대기업과 법정싸움을 벌이게 된다.
 
백 작가는 지인으로부터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음원제공사이트에서 어느 음원의 배경화면으로 자신의 작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백승휴 작가는 중앙대학교 지식산업교육원에서 주임교수를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외 사진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는 백 작가에겐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심지어 백 작가가 인터넷에 작품을 공개할 때 사진에 표시해둔 저작권 표시를 삭제한 채 이용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백 작가가 항의를 하자 대기업은 콘텐츠 제작업체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리고 연락이 닿은 콘텐츠 제작업체 담당자는 백 작가에게 상처를 줬다.
 
“그쪽 담당자가 ‘저작물 자체를 쓸 수도 있지, 그게 중요하냐’는 반응을 보인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쓴 것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으면 되는데, 보상 보다는 판결로 가서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고집이 있었습니다.”
 
콘텐츠 제작업체와 상대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백 작가는 대기업과 직접 소송에 들어갔다.
 
보상금 얼마에 만족하지 않고 창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판례로 남기고자 대기업과 법정싸움에 들어간 백 작가는 이 과정에서 결국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낸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는 저작권을 잘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중국을 보면 알 수 있죠. 창작물에 대한 보호를 받기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 사건 이외에도 백 작가의 창작혼에 상처를 준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발생했다. 거액의 보증금을 내고 한 업체의 사진촬영을 전담하는 일을 해왔으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악덕업주를 만나 업무를 하지도 못하게 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을 찍었으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다.
 
“서너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제 나이 39세 때의 얘기입니다. 그때는 절망감, 사회에 대한 원망 모든 것들이 몰려왔죠.”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이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을 심하게 겪을 경우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예술인들이 많이 있지만 백 작가는 달랐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성격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전만 해도 불평불만이 많은 성격이었으나, 이 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 백승휴 작가는 올해 열린 장애인작가들의 사진전에 지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난을 겪으면서 오히려 삶의 태도를 바꾸자 백 작가는 다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미 국내외 사진전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국제대학교 등에서 교육활동을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터였다.
 
2010년에는 중앙대학교 지식산업교육원에서 인물사진컨텐츠전문가과정의 주임교수를 맡아 지금까지 교육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도 백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강의 준비다.
 
그는 “미리 학생들에게 사진을 제출받고 이를 토대로 수업을 진행한다. 2시간 수업을 준비하는데 10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입양홍보회가 주최한 공개입양아 음악회에서 사진을 찍어 전시와 음악회를 동시에 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또 KBS에서 1년에 두 번씩 50쌍씩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 합동 결혼실을 할 때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백 작가는 고난과 역경에도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인생을 열심히 살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충실한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백 작가는 지금도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마흔 넘으면 꿈이 어디 있냐 하는데 꿈이라는 것은 죽는 그날까지 갖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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