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대천이다. 보령시에 위치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신비의 바닷길로 이름 난 무창포해수욕장 근처의 농촌이다. 아버지는 농부다. 나이 70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제는 모내기를 하면 마음이 먼저 고향에 가 있다. 이번에는 3박 4일로 내려왔다. 나는 지금 모내기를 한 첫날 뻑쩍지근한 몸을 이끌고 글을 쓰고 있다. 이유는 땅을 밟으면 이상하게 기운이 나고 밥맛도 좋고 기운이 난다. 시골 출신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매제와 어머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논바닥을 고르고 계시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모내기를 하면 몇날 몇일 작목반에 참여하여 동네사람들과 모를 손으로 직접 심어야 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일이 매우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편해지면 어디 한이 있는가? 앉으면 눞고 싶은 것이 인간 아니던가? 비유가 좀 그렇지만. 나는 넓은 모자를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처럼 수건을 두르고 모판을 나르는 역할에 충실했다. 보조자(일명 시다바리). 사실 이런 일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
모내기를 마치고 모판을 수거하러 갔는데 논두렁 너머로 물안개가 춤을 추고 있었다. 황금들녘을 연상시키는 듯, 석양의 빛깔은 분명 황금색이었다. 풍년예감이다.
이곳은 간사지다. 바다를 막아서 만든 논이란 뜻이다. 석양이 논에 가득찬 물에 반사되어 영락없는 바다다. 바다 너머로 석양이 지는 듯한 연출이다. 그러나 저 멀리 아스라히 전봇대가 보이는 것이 바다는 아닌 듯 싶다. 모내기를 마치고 논에 물을 대어 어린 모들이 잘 자라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항공 촬영이라도 한 듯, 논 구석으로 몰려든 찌꺼기들이 환영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
이렇게 고단한 하루를 보내면서 매일 힘겨운 일터에서 자식들을 위해 힘겨운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사시는 부모님께 감사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분들의 일터는 분명 들녘임에 틀림없다. 효도하는 자식이라고 하여 편히 쉬시라고,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는 것은 효가 아니라 불효이다. 나의 부모님에게 일은 틀림없는 노동이다. 즐기는 놀이와도 같다. 아버지는 들녘을 놀이터로 삼으셨고, 나는 카메라로 논다. 노는 도구가 다를 뿐이지, 부모님에게 때로는 힘겹지만 들녘에 황금빛으로 변해갈때 느끼는 성취감을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식으로서 가끔 내려와 도와 드릴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디 건강하시길 바랄 뿐이다. 나는 정직으로 땅을 터전 삼아 사시는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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