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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보리애찬, 나는 너가 좋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나는 뭐든 광신하지는 않는다. 자존이기도 하지만 광신할 정도로 믿을 게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사람들이 애완견을 가족처럼 키우는 이유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편함과 불신도 한 몫을 했을게다. 개는 최소한 주인을 배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도 있겠지만. 항상 자기의 생각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인간인지라 그렇고, 또한 내가 하고 있는 말들도 전부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항상 상대적이기에.

음식은 맛으로도 먹고, 살기 위해서도 먹는다. 뭘 먹을지 선택하는데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풍요로운 시대에 골라먹는 재미보다도 선택적 의무감에 부담을 느낄때가 더 많다. 음식은 약이란 말이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나는 보리밥을 좋아한다. 현미랑 잡곡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쌀밥에 대한 배신도 한 몫을 했다. 고향에서 보내주시는 쌀을 정성스러울 정도로 먹는다. 남기면 안되고, 보내주신 정성을 봐서라도 맛나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서 중성지방간이란 판정을 받았다. 죽을 병은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서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주범은 흰쌀이었다. 가래떡도 좋아하고, 쌀밥도 좋아하고, 뭐 떡도 좋아하고 했었는데. 그런 배신을 당하다니.... 그래서 요즘은 밥에 흰쌀은 30%가 안되게 먹는다.

보리밥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일단 보리밥은 나이 기대에 최소한 배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리밥이 좋다. 쌀처럼 한번씹으면 자지러지지 않고 탱글거리며 반항하는 맛이 있다. 하루가 지나도 그 기품을 잃지 않고 꼿꼿하다. 먹고 나면 빨리 소화되는 단점은 뭔가 먹어야 한다는 할 일을 줌으로써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누릉지를 해 먹어도 그 기질은 변함없이 힘이 있어 긴장하고 먹게 한다. 늘 긴장감을 주는 보리밥이 나는 좋다. 그리고 까칠한 목넘김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쌀밥은 몇번 씹으면 죽처럼 질감이 없다.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보리는 어설푸게 씹으면 더 곱추세우고 일어난다. 이런 기질이 나를 닮았다. 밟으면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생기발랄하다. 

또한 보리밥은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타임머신을 태워 어린시절 보리밥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점심시간 으레히 쌀밥 검사를 하며 보리밥을 권장했다. 그때는 죽자고 쌀밥을 싸갔다. 보리는 쌀보다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는 기질이 있다. 보리 재배가 적어 가격이 비싼 것이 좀 불편하지만. 내가 농사를 지으면 보리를 재배해서 먹을 생각이다. 그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먹을 것이니 유기농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보리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보리밥, 나는 너가 좋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