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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Therapy

사진이 주는 의미, 위즈돔강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진이 주는 의미, 위즈돔강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난다. 1839년, 화가들에게 사진의 발명은 그들의 삶과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창작자들의 모방 즉 미메시스가 화가들에게 차이에 대한 물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에게 직접적인 모방은 수치이면서도 치명적인 일이다. 물론 칸트는 그 미에 대한 개념을 심적인 문제로 보며 모방에 대한 개념을 예술가가 바로 천재이며 천재가 만들어내 창조물이므로 모방이 아님으로 그 개념을 바꿔버렸다.

 그렇다. 논리의 문제는 인간의 심적 문제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은 사진의 사실성을 배제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로 보았다. 미술과 사진, 나는 미술이 가지고 있는 심적 표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술치료를 예를 들면, 참여자가 그린 그림 속에서 그의 내면을 읽어내는 도구로 그림을 활용하고 있다. 나는 강의와 임상실험을 통하여 터득한 내용을 말하고자 한다. 사진이 그렇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관심, 과거의 기억, 현재의 고민, 미래의 꿈이 담겨있다. 물론 사진을 찍어내는 기술적인 차이와 방법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은 있지만 말이다.

지인의 소개로 위즈돔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참가인원 8명, 조건은 자신이 촬영한 사진 10장을 미리 메일로 보내는 것이었다. 10장의 사진을 분석하고 그 사진을 통하여 참여자와 소통을 한다. 관심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가적, 인생 조언자적 입장에서 푼다. 때로는 사진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 사람의 사진가적 길에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며 마음을 터놓은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수강자들의 사진을 보고 그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던 내용들을 통하여 타인과 공유하고자 한다. 심적인 것에는 100점 만점에 100점은 없음을 감안하기 바란다.

창문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아마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상으로 현재의 표정이 보고 싶어진다. 창문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렌즈를 통해 뿌옇게 보인다. 조리개가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조리개를 조였더라면 극명하고 차가운 빛이 아이의 어깨를 넘어섰을텐데. 마찬가지로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무표정과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촬영자의 의도가 보인다. 의도란 찰나를 표현하기위한 기다림이 필요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조용히 앉아서 계단을 바라봤고, 아이의 뒷모습을 살포시 마음으로 껴앉으며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배려가 있고, 잔잔하게 내려앉는 빛깔 만큼이나 마음 한켠에 뭔가를 담아 놓은 무게감이 보인다. 무겁지 않은 희색의 무게감 말이다. 디자인적 감성이 풍부하고, 사진을 논리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으나 촬영자의 시각은 세련되어 있음이 보인다. 빛이 주는 의미처럼 타인을 배려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을 줄 알며 무겁지 않은 고민과 생각속에 일상을 살아가는 조력자로서 세상의 소금이 될 사람임에 틀림없다.

 

미술을 좋아하던, 종사하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나의 뇌리를 스친다. 아이들이 포퍼먼스를 하듯 닭장같은 틀속에 아이들을 집어 넣었다. 자유로운 움직임과 색깔과 톤을 이용하여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했다. 단색의 바탕위에 선들이 구성된 구조물을 위치시켰다. 자존감이 강하다. 자신의 색깔로 뭔가 차별화된 결론을 얻고자 했다.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그의 외형의 독창성까지 점치게 만든다. 이것을 그림으로 봐야하나 사진으로 봐야하나. 이런 고민을 나에게 던지는 이유는 미술적 내용을 디자인적 포장을 통해 특이하게 찍어놓은 사진이라서 뭐라 명명하기에 껄끄럽다. 아마 자신도 진정하기 힘든 독창적인 행위를 서슴치않는 소양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진에서 규칙을 찾을 수가 없다. 기억속에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장난스런 장면은 돈키호테와 같은 당당함과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원칙이 있다. 말 잘하고 적극적이며 꼼꼼하며 정리를 전부 잘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 하느님이 능력을 주실때 전부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을 만들어내는데는 선수다. 사람과 소통하려는 자세가 영력하다. 사진이 고급스럽다거나 사진을 공부해서 원칙적으로 찍어낸 사진은 아니나, 이런 사진들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이 사람은 에너지가 강하며 많은 사람들과 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 '일의 미래'에서 예견했던 2025년의 외로운 삶에 준비되어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으로 본다.

우측 사진에서 앙리 브레티에 브레송이 떠오른다. 그의 사진에서도 물을 건너가는 찰나를 잡아낸 사진이 있다. 젊은이가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반대편에 그의 그림자가 의도적으로 남아 있다.얼마를 기다렸으며, 그가 뛰어갈 거란 예상을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사진을 찍어본 경험과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사진이란 생각이 든다. 고로 사진을 조금 했음직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아이레벨이라 해서 눈높이, 보이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윗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또는 비딱하게도 찍을 수도 있고, 방법은 셀 수 없을 만큼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을 제외한 피사체들이 흔들림효과처럼 속도감을 보인다. 주인공은 그냥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그의 내공대비 시도에 대한 아쉬움만 주고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자기의 이야기를 담는 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바램과 찍은이의 가능성에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재미있다. 구도를 알고 있다. 배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로 못지 않은 사진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다. 흥미롭고 뭔가 찾아낼 수 있도록 문제를 내주고 있다. 그림자는 연기처럼 흐림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가능성에 대한 다양화를 만들어준다. 그림자의 동작에서 그대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아마도 백이면 백 다른 생각에 잠길 것이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놀던 모습, 뮤지컬에서 무희들의 동작, 소리치며 외치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일수도 있다. 아이들이 소방수복장을 하고서 앙큼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보는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의 반대편에 여백을 둠으로서 나타날 무언가를 상상하게 한다. 디자인적 구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습이 풍부한 아이디어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빛방울이 드리운 유리에서 정서가 보인다. 그 빛방울이 눈물이라고 말하고자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사진에서는 아이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찍어 놓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바닥에 비춰진 그림자가 눈에 띈다. 두장의 사진에서 전이가 일어난 것이다. 함께 있으며 그것의 정서가 옆에 있던 이미지에 옮겨 가게 된다. 눈에 확 들어왔던 아이들의 뒷모습속에서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공통언어를 찾고자하는 의도에서 정서를 택했다. 추억, 감정, 하나의 언어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자하는 정적이면서도 사고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행위와 인식속에서 '왜?'를 외치고만 싶은 그 기질,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의 생각이 속마음이 들키듯 마음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사진을 통해 상호 소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이 놀이의 도구라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어느 학생의 질문이다. "사진평가에 대한 상대의 공감과 그 차이에 대한 부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예리한 질문이었다. 나는 답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다. 또한 의식적으로 본 것과 무의식속에 자아를 찾아가는 것. 그것에 개념과 차이는 분명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지금 이자리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것이라고. 프로이드나 융처럼 정신에 대한 분석들의 신뢰도는 많은 경험여부였다.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의 사진과 그 사람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자료수집을 통하여 그 깊이를 더욱 높였다. 미술이 그렇고, 음악이 그랬으며 인간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오감의 터치가 인간을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이 테라피이며, 사진으로 그 가치를 부여시키는 것이 포토테라피의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