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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기차가 주는 낭만.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어린시절, 나는 서울에 올라 올때면 완행열차를 타야했다. 용산역까지 9시간도 걸렸다. 연착되면 그냥 간이역에서 통일호를 비롯한 한단계 높은 등급의 기차들의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떠난 기차여행은 기억에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3대가 살았기 때문에 친척집에 갈때면 그분들과 가야했다. 왜 일까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완행열차는 낭만이 아니었다. 저렴한 비용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 절약정신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녹슨 철길에 눈이 살짝씩 덮여 있다. 오래된 듯 퇴색된 느낌들이 과거로 거슬러 올러가게 한다.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몸짓이다. 어린시절,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의 설렘이 멀리서 기적소리는 두려움으로 바뀌곤 했다. 말로만 써 놓은 기차길보다 이미지가 딱커니 보여주는 글은 실감난다. 이 작품은 포토테라피 강의시간에 제출했던 학생, 이정순씨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은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기에 좋다.

기찻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바닷가 사진은 무슨 영문일까? 그것은 바로 기차의 목적지를 떠 올릴 수 있는 이미지이기에 그렇다. 남녀가 두손 꼭잡고 걸어왔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기차가 낭만을 주는 이유는 연인의 이미지가 기억속에 잠길 수 있음이 아닐까 싶다. 푸른 바다, 포말, 그리고 정겨운 발자욱이 연인의 뜨거운 눈빛까지도 회상하게 만들어준다. 이미지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 포토테라피의 수강생, 장은숙씨는 이미지도 사랑스러운데 사진까지 정감이 있어서 꼭 그녀를 닮은 사진이라는 확신을 준다.

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할아버지는 미취학아동으로 역무원에게 나를 속였다. 눈치챈 역무원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로 가서 나이를 심문받았다. 그때 떨렸던 가슴은 군생활동안에 갔던 영창안보다도 살벌함을 느꼈다. 그들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어허, 학교도 안들어간 아이유... 쯥쯥!" 그러나 나는 잠시후 쫄아서 고백했다. 당당하게 아홉살이라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핀잔은 친척집에 가는 내내 들어야만 했다. 그때만해도 내가 순진했던 모양이다. 요즘같으면 식은죽 먹기인데 말이다. 하하하. 아무튼 그 시절의 할아버지는 몇년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염라대와앞에서 할아버지의 나이는 속이질 못하셨을 것이다. "난 나이가 젊어서 아직 이곳에 올 사람이 아니다."라고, 아마 그 거짓말이 안먹혔는지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위험있고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 그때 그 일은 돈때문만은 아니였죠? 그냥 저를 실험에 들게 한 거지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라고...." 이런 의도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나는 오늘도  먼거리를 ktx라는 최고급의 속도와 비용으로 나의 몸을 실는다. 대한민국 전역을 2-3시간이면 주파하는 무서운 놈이다. 미리 표를 끊어 놓지는 않는다. 시간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예술가적 자유에 대한 욕구때문일 것이다. 그의 속도는 과히 놀랄 만하다. 순간이동처럼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다다른다. 때로는 몇페이지의 책장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내리라 한다. 낭만이란 건 없다. 예전처럼 아저씨의 음성이 아닌 아립다운 아가씨의 세련된 서비스만이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곤 한다. 

나는 한시간 이상의 거리는 기차나 버스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를 타면 무조건 잠을 잔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차는 차창밖을 바라보는 여유와 과거로의 회상과 더불어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건너편의 아기가 칭얼거리며 우는 소리도 좋다. 시골 아낙의 큰 사투리도 괜찮다. 지방색이 짙은 사투리면 더욱 좋다. 그런 것들이 기차여행의 묘미이다. 여행하는 동안 기차는 상상을 일으키기에 좋은 머신이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