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현실과 환영.
나는 한달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오사카를 두번 방문했다. 첫번째는 학생들과의 졸업여행이었고, 두번째는 가족여행이었다. 왜, 여행과 쇼펜하우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란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으며 사는 사람이고, 그가 남긴 말때문이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가, 아니면 보고자하는대로 보이는가라는 질문과 그의 답변이 명료했고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답은 보고자하는대로 보인다였다. 염세주의자였던 쇼펜하우어의 논리는 결코 부정적이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보고자하는 목적에 따라서 오사카의 나라가 달리 보였다는 것이다. 1차원적인 사슴이 많은 곳, 아들이 모이를 주는 장면만 보이는 가족여행에서의 시각과 또 다른 목적에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째는 학생들과 환영(illusion)을 촬영할 목적이었고, 가족여행은 단순히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위한 목적이었다. 환영을 보고자했을때는 모든 것이 그렇게 보였지만 두번째 방문에서는 그냥 액면 그대로의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 보이는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쇼펜하우어다.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것을 말했다. 나 또한 교육을 통해서 그 내용을 말하며 공감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초등학생들의 사진교육에서 주변을 찍어오라는 과제을 내준바 있다. 그들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라고. 매일 다녔던 동네어귀마저도 달리 보려고 하니 다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마저도.
나 또한 오사카행을 반복하면서 그 차이를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 사슴이 많은 지역인 나라에서 그 사슴이 단지 아이들의 친구로 존재하는가 하면 과거로 부터의 회귀를 말할때 활용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여행이란 목적에 따라서 여행의 경로뿐만 아니라 생각에 비춰진 시각도 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명하게 세상은 우리가 보아왔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서 그곳의 풍광은 달리 보인다. 사진찍기 또한 생각을 함께하는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서 달리 찍힌다. 물론 렌즈란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기에 당연한 말이지만 그 생각에 따라서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또한 극명하다.
쇼펜하우어가 말하기를 인간이 고통스러운 것은 의지가 밖으로 표명되는 것이 표상이고, 욕구에 의해서 의지가 만들어진다. 인간은 빈하거나 권태롭다. 가난은 부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고, 부의 완성은 더 큰 부를 욕구하기에 더욱 수렁으로 빠지는 순환을 반복한다. 빠르게 목표를 도달하는 것도 그 다음의 할일이 없음으로 권태가 시작되며 고통이 재발된다. 욕구를 풀어가기 위한 과정에서 고통을 덜어낸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일은 그 만족에 도달하는 경지가 끝이 없기에 그 욕구를 향한 상상이 더욱 권태로움으로 부터 그 스스로를 구해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인간이 동물과 다름을 말하며, 오성과 이성중 인간만이 가진 이성에 의해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가진자가 더 고뇌스럽듯이 이성을 가진 인간이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는 자이기에 더욱 더 하다. 그러니 인간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달게 받아 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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