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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환영(illusion), 헛것이 보일 때까지 찍어라. 곤지대왕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환영(illusion), 헛것이 보일 때까지 찍어라. 곤지대왕

사람이 기력이 쇠하면 헛것이 보인다.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눈동자의 밑 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두개의 상이 보인다. 이것을 환영(illusion)이라고 한다. 헛것을 만나러 여행을 떠났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나오는 '피뢰침'처럼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러운 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사람의 눈으로 환영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한번 크게 놀라면 그와 비슷한 모양만 보더라도 그렇게 보인다. 이처럼 한두 번의 환영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는 다르게 카메라는 그 광학적인 철저함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졸업여행을 환영을 만나러 떠났다. 때는 고대의 오사카. 만날 인물은 백제 게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이었다. 놀랍게도 그를 오사카의 아스카베신사에서 주민들이 모시고 있었다. 짧은 역사지식을 가지고 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열정적인 학생들과의 동행, 그리고 오사카 상업대학의 양형은 박사님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흔들림, 빛의 산란, 색깔의 변화에 의하여 환영을 만들 수 있다. 환영을 찍는다는 것은 경험하고 준비한 만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모사를 통해서. 카메라의 광학이 감성의 자유로움을 만났을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마치 레이어의 겸침 속에서 반투명이 갓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듯. 나는 곤지왕이라는 존재를 빛과 새로 형상화하고자했다. 오사카의 지명에서 보여지 듯 새 이름과 빛이 가진 절대자로서의 이미지로 그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사진이 가진 환영(illusion)을 그 방법과 의미에 대한 덧붙이고자 한다.시간과 공간이 초월되는 시점을 찍었다. 고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갈망이 빛을 중심으로 물체의 변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색감으로 통하여 이상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어느 공원에서 조용히 모이를 먹던 비둘기를 쫓아다니며 만들었던 영상이다. 흔들림을 통한 불확실이 만들어내는 형상이다. 곤지왕을 절대자로 표현하며, 빛이 가진 힘을 통하여 비둘기들의 이동을 빨려 들어가는 형상으로 표현했다.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되는 상황을 재현한 것이며, 곤지왕이 의미하는 빛과 새의 이미지를여 내가 환영으로서의 곤지왕을 만나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곤지대왕을 만나기 위해 신사로 향했다. 신사 앞의 포도밭 비닐하우스에서 강렬한 빛이 왕궁처럼 신성한 느낌을 표현했다. 햇빛 때문이 아니라 그 강렬한 기운이 눈을 뜰 수 없었다. 고개를 숙였다. 왕을 대하는 신하의 마음으로. 가까스로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 낯인데도 하늘이 어두워지며 신사 안쪽으로 붉은 색깔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행들은 신성함 이전에 두려움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난 뒤 우리는 참배를 하고 뒷산의 묘지로 향했다. 묘지 안쪽에선 푸른 기운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푸른색은 백제를 상징한다고 했다. 하늘도 같은 색깔을 하고 있었다. 그 영험함, 그 기운이 나에게 색깔로, 빛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위엄과 신비스러움으로 비춰졌다. 강력한 빛, 붉은색과 분위기는 신사의 위엄, 푸른 빛깔이 보여주는 절대자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진 동아줄을 잡아서 종을 쳤다. 자신이 왔음을 신에게 알리고, 자신의 고함을 들어 달라는 의식이었다. 구름이 해의 강렬한 빛으로 변하며 전달하고자하는 의도가 드러났다. 마당 한 가운데 큰 나무에 묶인 줄에 매달린 종이가 시선을 끌었다. 갑자기 종이에 뭔가가 적히기 시작했다. 푸른빛을 띠던 종이에 따스한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곤지대왕? 고대의 문자는 텍스트가 아니라 느낌이라는 비언어가 아니었을까? 색이 언어로 둔갑하며 따스한 미소가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사천왕사의 대문 앞에 만들어진 중들의 모형들 사이로 비춰지는 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샤워를 하듯 빛이 골고루 비춰지고 있었다. 사천왕사는 백성을 위한 절로 지어졌다했다. 건물은 백성이요, 나무는 왕이다. 최초에 지어질 무렵의 나무그림은 똑바로 하늘 향해 그 당당함이 보였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듯 북쪽을 향한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배려였다. 빛과 몸짓으로 보여 지는 곤지대왕의 화영이 나에게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봤다.곤지왕, 그는 왕 이전에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분노, 배려, 사랑, 시기와 질투까지도 가졌던 인지상정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알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채 인사도 못한 채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은 말문을 닫아 버리게 했다. 블랙홀처럼 내 몸이 빛이 보이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누구도 믿지 못할 여행에서 혼자 고이 간직할 경험을 글로라도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환영(illusion)이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뻥 같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을 남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이 진정 있고 우리가 그의 말을 못 듣는다고 생각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진 강의를 통하여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삶의 초석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환영을 만난다. 거울 속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환영을 만난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안 든, 낯선 것들이 나타나곤 한다. 얼굴이 예뻐 보이도록 화장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환영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다. 환영은 일상에서 우리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자연의 제안이기도 하다.얼굴에서 긍정의 환영(illusion)을 자주 보는 사람은 얼굴이 예뻐지고 일상이 즐겁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사진 찍기에서 우선으로 삼아야할 덕목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