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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Therapy

빨강의 심리, 원초적인 외침.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빨강의 심리, 원초적인 외침.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흑과 백을 제외하면, 인류 최초로 접했던 색이 빨강이라 한다. 나는 원초적인 본능처럼 빨강을 좋아한다. 나를 무장하고 싶은 욕구일까? 나는 그것을 열정의 색이라고 자칭한다. 물론 빨강이 열정을 상징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이다. 열정적인 삶에 대한 갈망일까, 아니면 자신을  강하게 포장하려는 방어적 행위일까. 나도 잘 모른다. 누구나 자신을 알기위해 무던히 애쓴다. 사람들이 전문가를 찾으며 그들에게 의지하는 것도 스스로를 찾고자하는 욕구에서 온 것이다.

누군가는 빨강을 마음의 찢겨진 피부사이에서 흘러내린 피라 했다. 뭉크의 [절규]에서 빨강 하늘처럼 아픈 기억과 고대인들의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도 빨강은 존재했다. 빨강은 삶을 고양시키려는 의도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빨강을 배치시킨 것은 강아지의 외로움을 안아주고자 한 것이다. 물론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다시 바라본 작품의 빨강은 약한 마음 속 고독을 나의 내면과 비유하면서 색으로 배려한 흔적으로 보인다.  작품은 작가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마음을 작품 속에 담았던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위적 행동으로 위안을 삼는 듯하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학창시절부터 담배를 피지 않게 만들었다. 요즘 건강에 안좋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시각에서 기인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범생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것은 나의 돌출행동에서 인식된 듯하다. 그런 행동은 관심을 끌기위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파마머리, 원색의상이 그것이다. 아무튼 나의 빨강에 대한 의미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 듯하다. 

'있는 듯 하다.'라는 적극적이지 못한 표현 방식에서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빨간색 옷을 입은 나는 자위하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 사진 속에 나는 결코 약하지 않음을, 약하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빨강이 비춰지지 않은 날이면 팬티는 어김없이 빨강이다. 요즘은 신발을 빨강으로 구입할 생각이다. 

나는 바란다. 그 어떤 것도 나의 삶에 어둠을 드리우지 말기를, 나의 열정이 식지 않기를. 두려움도 자신이 만들 듯이, 긍정의 희망도 나 스스로 만든다. 자유인이 되는 그날을 위하여 나의 빨강행진은 계속 되어질 것이다.

다시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