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날씨에 따라서 감정의 높낮이는 들쑥날쑥이다. 나는 비가 오는 일요일 오후, 추억을 되새기기위해 종로로 나갔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앞에는 맘에 맞는 사람도 필요했다. 집에서 파전이나 김치전에 아내와 나누는 담소도 흥겹지만 또 다른 분위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심성인지라 나도 모르게 발길이 종로로 옮겨졌다.
노랑 가로등 불빛아래 비슷한 색깔을 한 여인, 그 뒤를 따르는 남자. 뭔가 심상찮은 느낌을 준다. 살짝 앞서가는 또 다른 여자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림자들이 이들의 움직임을 쉴새없이 녹취하고 있다. 살랑 살랑, 유혹하는 소리가 포착되고 있다. 막걸리에 취한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또 다른 상상도 자유다. 소설을 써도 되고 영화를 찍어도 된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냥 이렇게 이들의 몸짓만을 지켜보고 싶다. 얼굴은 안봐도 된다.
살짝 이슬비가 뿌려지고 있다. 가로등이 한 송이 꽃같다. 붉은, 파랑, 노랑, 하얀색의 반영이 물감을 으깨어 놓은듯 신비롭다. 바닥의 반영은 물기가 만들어낸다. 경복궁 담장이 오늘따라 여운을 준다. 시간의 머신은 나를 훌쩍 담장너머 임금앞에 세워놓을 듯한 그런 밤이다.
사람이 가는 길과 차가 잠자리에 들어가는 공간. 이 둘은 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듯하다. 베트맨이 타고갈 듯한 날렵한 승용차가 화려한 불빛에 취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반대쪽에 댄서들의 춤사위가 벌어지고 경쾌한 음악소리가 나의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세상은 항상 우리가 보는 곳이지만은 않다. 새로운 옷을 갈아 입고 우리를 유혹하곤 한다. 가을의 단풍과 겨울에 함박눈이 이곳을 지나가는 연인들의 시선을 가로챌지도 모른다.
달밤에 풍류가들에게 읽혔던 술잔속의 달빛, 여인의 눈동자, 그리고 마음을 내 나름대로 정의하려했다. 막걸리사진이 있음에 왠지 커피에 디자인된 멋진 그림이 갑자기 술을 담그는 과정에 보여지는 이미지로 둔갑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동동주를 담그며, 방안에서 찐하게 풍겼던 어린 아이에게는 역겨운 그 냄새가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사진이 보여지는 또 다른 풍광은 찍은 나나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이나 각기 다른 추억의 뒤안길로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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