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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휴 칼럼/Photo Essay

사진이 주는 감정의 조각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어디서 뵐까여? .... 그럼 서부이촌동에 '커피공장'으로 오세요. 오라니깐 간다. 그러나 일부러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그곳으로 향했다. 이유는 나의 20대를 보냈던 곳이었기에 그 과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1986년 대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 친척집에 기거하며 시골뜨기의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던 곳이었다. 물론 가보니 내가 살았던 곳과 200m도 안 떨어진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네비게이션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판이 없었다. 예전에 비해 새로 지은 아파트는 간간이 눈에 띄였지만 나머지는 옛날을 고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더 정감이 갔다. 심플하게 창문에 커피잔이 희미하게 그려져있었다. 사진처럼 이런 그림만이 메니아를 도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불친절한 간판을 보면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백승휴 스튜디오의 그냥 "백승휴"라고 적어놓은 '싸가지없는' 간판이 떠 올라서 일거다. 

들어서자 마자, 그곳을 지키는 (내가 만든 점원의 명칭) 공순이에게 말했다. "아니, 무슨 배짱으로 이런 간판도 없이..." 물론 농담으로 친근감을 표하기위한 나만의 멘트였다.

책이 있고, 커피 봉다리가 있고, 그리고 클래식 오디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빛이 이 공장을 더욱 아늑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바닥에 파인 굴곡은 시간의 흐름과 주인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 보였다. 주인은 작가라 했다. 실제로 흐르는 음악이 커피맛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이 사진은 오래된 질감의 어플이 더욱 그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있다.

작은 잔에 리필로 따라준 드립 커피다. 맑은 맛과 향이 우중충한 날씨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줬다. 갈색의 농담이 그라데이션으로 만들어내는 그 풍경은 일품이었다. 맑은 거품 속에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상을 말하고 있다. 비주얼과 미각 그리고 살짝이지만 툭툭 터지며 사라지는 청각을 깨우는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 툭툭 터지는 소리가 얼마나 들리며 그것이 큰 감동을 줄까를 생각하면 허풍같은 소리이지만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그 소리는 나에게만큼은 대단히 컸다. 이 집의 커피는 이렇게 다양성을 부여시켜 주고 있었다.

왠지 이 둘에서 공통어를 뽑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창밖으로 갑자기 소낙비가 하늘을 어둡게하며 퍼붓고 있었다. 분위기에 젖어 나는 재빠르게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갑자기 비슷한 소리가 났다. 물론 나에게만 들려오는 심적 동요와도 같은 음성이었다. 이런 음성 뿐만 아니라 두드림에 대한 또 다른 의미는 깨움이었다. 아니 소통이다. 그런데 뭐라고 해도 이 둘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많다. 자판은 타인과의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소낙비는 잠자는 대지를 깨우는 것이니.  당연히 이야기하고자하는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차창을 때린다. 동작대교로 보이는 한강다리에는 요란스럽게 소리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노랑과 파랑이 조화를 이루며, 그 중간에는 보랏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의 속도감에 맞춰 불빛이 춤을 춘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이 파편을 일으키며 또 다른 시각을 만들어낸다.  

나에게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 또 다른 현재를 말해주지만 영원할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냇가에 흐르는 물처럼 영원할 거라는 착각만을 남기며 다시 오지 않는 현재를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