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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련/백작가의 '작가만들기'교실

청산도 프로젝트를 음미하다. 미리 가 본 그곳.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우연히 만난 카메라가 필연적 행복을 주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사진을 찍으며 살아왔다. 요즘은 가르치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 재미는 사람들과 나누는 쏠쏠한 수다와 그 수다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매력때문이다. 그 매력은 논리이며  철학이며 마음이며 또 거기에는 나를 만날 수 있는 계기들이 존재하기때문이다. 1시간 강의를 위해 몇일을 고민하며 준비한 적도 있다. 몇일의 고민은 단지 1시간 강의에 끝나지 않고 열정에 불을 지핀다.

또 재미난게 있다. 여행이다. 그냥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사진찍기여행이다. 물론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그런 일상과는 다르다. illusion여행이다. 환영, 그 여행지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 것이다. 뻥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찍은 사람의 몫이며 찍은 사람이 판단할 문제다. 타인의 섣부른 판단으로 한 사람의 영혼속에 희열을 꺾으려 들면 안된다. 그 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기에 그렇다. 귀신을 보던 신을 믿던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술가들이 창작과정에서 즐겨쓰는 방법이 바로 환영이다. 특히 화가가 그렇고, 음악가들 또한 이것에 자유롭지 않다. 환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블로그를 안내한다.   http://www.100photo.co.kr/552

집중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우연으로는 그것을 얻었다한들 감동이 오지 않는다. 여행에서 환영을 찍는것은 집중이 필요하다. 물론 과정에서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다. 교회의 부흥회가 여렷이 보여야 기돗빨이 먹힌다는 이티와 같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움직이며 공감하는 것들에 의해 원하는 이미지가 더 극명하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모든 창작적 과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미리 말하면 욕을 얻어 먹는다. 그러나 사진으로 여행지를 미리 말하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청산도는 신비롭다. 구부러진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건너편이 빤히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해무가 뒤덮이면 그 건너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살짝씩 보여주곤 한다. 카메라는 아지랑이처럼 보일랑 말랑하는 것은 찍어낼 수 있다. 이런 장면을 만나는 것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확률보다도 작다. 그러나 항상 준비하면 가능하다. 그 준비는 몸과 마음이다. 흐트러짐으로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이건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얻어진 즐거움을 행복은 착각일 수밖에 없다. 청산도는 바라보기에 따라서 신비롭기도 일상적이기도 하다. 그 기준은 내가 정한다.

청산도는 이웃처럼 친근하다. 돌담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섬들에서도 볼 수 있고 왠만한 시골에 가도 있다. 돌담이 아닌 벽돌담이라도 좋다. 이웃끼리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사적 삶을 보호하기위한 잠금장치로 봐도 된다. 그러나 도심은 벽들과는 사뭇 다르다. 청산도의 담장은 그 사이에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은 언제 만날지도 모를 이웃의 친근한 얼굴에 대한 기대를 준다. 언제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그 이웃처럼, 청산도의 돌담길에는 친근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청산도의 청은 푸를 청이다. 봄에 가면 청보리를 만날 수 있다. 가끔 바람이 불때면 고개를 저으며 웃어댄다. 청보리만이 그런게 아니다. 소나무, 풀잎들도 푸르다. 젊음을 푸르다고 말하고, 깨끗함을 말하기도 한다. 그 깨끗함은 물리적인 깨끗함을 포함한 청빈함도 포함된다. 아마 청산도에 다녀오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며 나이는 젊어지고, 정신은 잡념이 사라질게다. 

청산도는 꼬불거리는 길이 있다.  길들이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꼬불거린다. 쭉뻗은 아스팔트길에 질려버린 우리에겐 꼬불거림이 포장된 길일지언정 청량감을 준다. 좁다. 사람을 만나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게 배려를 해줄 수 있다. 청산도는 친절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청산도의 자연이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혜택이다. 쭉뻗은 길들은 뻔한 시야를 만들어 주지만 꼬불거리는 길은 걸어가면서 바라보이는 곳이 매번 달라진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청산도는 시골의 인정과 친절함이 있다. 그것은 자연에서 배운 지혜이다. 때로는 불친절해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친절에 대한 역설적 표현일 뿐이다.

청산도는 꿈꾼다. 바람에 나부끼느라 이파리가 다 떨어져버린 바닷가 풀들을 보라. 앙상함은 당당함으로 우리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홀딱 벗어 보이고 있다. 육지는 섬으로 향하고, 섬사람들은 육지를 꿈꾼다. 육지에 대한 로망은 무의식 속에서도 자라난다. 수평선은 끝이 없다고 했다. 수평선에도 끝은 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평선도 그렇고 수평선도 그렇다. 끝은 있다.  염원도 끝이 필요하다. 염원도 끝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꿈이 된다. 그러나 청산도의 꿈은 끝이 없다. 계속 갈구하고,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지금까지 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청산도의 꿈은 우리의 꿈과 닮아 있지만 다르다.


청산도는 설렘을 만든다. 익숙에서 낯섬으로 진입하면서 생겨나는 것이 설렘이다. 물론 그것을 자극하는 것은 호기심이지만, 그 발단이 유무를 떠나 그 설렘의 문턱은 항상 낮다. 배안에서 청산도로 향하든, 그곳에서 육지로 향하든, 누구에게나 설렘을 느끼게 한다. 청산도는 그렇다. 네번을 가고도 또 다시 가게 한 그곳. 딱 찝어서 말할 수 있는 매력은 아니지만. 첫만남, 첫느낌 등 첫사랑의 아련함처럼 청산도에 도착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반복의 연속이 아닌, 다름을 만나러 간다.

여행이란 어디에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청산도 프로젝트는 그런 조건을 떠나서 왜 가야만 하는가? 우리가 그곳에서 왜 찍어야만 하는가로 목적지에 대한 의도로 풀어가고자 한다. 거기에서 나를 만날 수도, 상상과 갈망 속에 다른 존재를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갈망하는 무엇에 의하여 결정지어질 것이다. 10명이 셔터를 눌러도, 그 소리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욕구들이 다르게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청산도 프로젝트를 음미하다. 미리 가 본 그곳.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포토테라피 강좌, 청산도를 가다. 여성능력개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