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풍랑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신비의 섬, 울릉도. 항구에 도달하자 플랭카드가 눈에 띄었다. '가수 이장희 공연'이라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세번째 울릉도행이었지만 친절한 안내자덕에 울릉도의 곳곳을 여행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그중에 한 곳이 가수 이장희씨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들어서는 입구에는 '울릉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들어가보니...
들풀처럼 보이는 것들 또한 자연의 것은 아니요, 주인의 손길에 의해서 길들여진 것들이었다. 더욱 장관인 것은 울릉도의 귀암절벽이 능선의 너머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하면 병풍처럼 뒷편에는 쭉쭉 뻗은 나무들이 그곳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었다. 아바타처럼 CG의 힘을 빌리거나 애니메이션화 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이상향스런 이미지를 만날 수 있었다.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연못이 평온함을 더해주고 동네의 풍경속에서 예배당 종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사진가들의 눈요기감으로 충분했다. 가을하늘의 뭉게구름과 연못안의 수련들이 르네상스 화가들의 붓질을 한듯 했다. 콕 찝자면 모네의 수련같은 것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물속에 비친 세상, 수련들의 모양에서 패턴 찾아내기, 연못가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연못 배경으로 찍어내며 웃음짓는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흥미로웠다.
가수 이장희에게 무대는 고향처럼 항상 그 인자가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었다. 항상 설레고 가슴 쿵닥거리는 그것. 그 끼를 주체할 수 없음에 그는 항상 목청을 가다듬고 있으리라. 가지런히 꾸며진 무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전에 분출하는 나를 정리하는 공간으로 만든 장소임을 알아챘다. 시공을 초월한 천국의 마당에서 나는 멍하니 그의 삶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는 지금 사후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시왕의 병마용처럼. 진시왕은 지하세계를 준비했고, 가수 이장희는 지상에 건설하고 있었다. 표면은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아우라 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죽음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함을 재인식했던 경험이었다. 무대에서 죽기를 갈망하는 선택이 보였고, 그가 말한 '울릉천국'은 자연이 만든것이 아닌 그 자신이 건설해가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집안에 들어가면 그 주인의 성격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함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이장희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가수 이장희가 나에게 가르쳐준 진실은 결코 천국은 사후세계가 아니며, 자연이 만들어 놓은 타성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 여행이었다. 그는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다. 난 그렇게 믿으며 믿고 싶다. 이곳을 안내해준 여행전문가, 빡빡이 장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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